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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사상과 핵소 고지(Hacksaw Ridge) (겸애, 비공, 전쟁철학)

by cinema-1 2026. 3. 11.

솔직히 저는 묵자라는 인물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 그저 공자와 맹자 사이 어디쯤 있던 사상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를 보고 나서 묵자의 철학이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얼마나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전쟁 속에서 총을 들지 않고 생명만 구한 실존 인물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는, 묵자가 춘추전국시대에 외쳤던 비공(非攻)과 겸애(兼愛) 사상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묵자가 던진 질문, 전쟁은 정당한가

묵자는 기원전 5세기경 중국 전국시대를 살았던 철학자입니다. 당시는 제후국들이 끊임없이 침략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는데,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전쟁을 통치 수단으로 받아들인 반면 묵자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비공(非攻)이라는 개념으로 침략 전쟁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여기서 비공이란 다른 나라를 먼저 공격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는 의미로, 방어 전쟁은 인정하되 침략은 명백한 불의라고 본 것입니다(출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묵자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개인이 물건을 훔치면 도둑이고,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다른 나라를 공격해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묵자는 이를 "대규모 도적질이자 살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제가 이 논리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적이었던 건, 수천 년 전 사람이 이미 국가 폭력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묵자가 비공 사상과 함께 강조한 것이 겸애(兼愛)입니다. 겸애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공자의 차등적 사랑과는 대비됩니다. 공자는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고 그 사랑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 반면, 묵자는 가족이든 타인이든 동일한 무게로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는데, 영화 속 데스몬드 도스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세계 1·2차 대전이 끝나고 1970년대 냉전체제도 종식되었지만, 지금도 국지전은 끊이지 않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국과 이란의 긴장 관계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묵자가 살았던 전국시대가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시기였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그에 못지않게 불안정합니다. 묵자는 그 광경을 목격하며 더 이상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고, 전쟁은 실용적 관점에서도 손해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냉전 시대에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으로 서로를 적대시했지만, 요즘 전쟁 양상은 이념도 가치관도 아닌 오직 국가 이익을 위한 공격입니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폐허와 인명 살상뿐이라는 묵자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제가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전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핵소 고지가 증명한 겸애의 실천

영화 '핵소 고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 인물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는 종교적 신념으로 총을 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의무병(combat medic)으로 참전했습니다. 여기서 의무병이란 전투 중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고 후송하는 역할을 맡은 군인을 의미합니다. 도스는 오키나와 전투의 핵소 고지 전투에서 홀로 75명 이상의 부상병을 구출했고, 이 공로로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습니다(출처: 미국 국방부 공식 기록).

 

 

묵자의 비공과 겸애철학과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도스가 절벽 위에서 계속해서 부상병을 구하며 "한 사람만 더 구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부상당한 일본군 병사도 똑같이 치료하고 구출했습니다. 이게 바로 묵자가 말한 겸애의 실천이 아닐까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하는 것, 그게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도스는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묵자는 사람들이 자기 가족만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면 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이상론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스의 사례를 보면, 한 개인의 실천만으로도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주도하는 전쟁을 일개 한두 사람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평화를 실천하는 자세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도덕적일 수 있는가? 폭력 속에서도 생명을 지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도스는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는 총을 들지 않고도 전쟁터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제 경험상, 한때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녔습니다. 저 역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여행을 갔는데, 대부분 새로운 문화와 먹거리를 체험하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묵자와 도스의 사례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타국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느끼는 데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줄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종식되어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면,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마음, 전쟁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용기, 평화를 만들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성을 지킨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묵자의 철학이 2500년 전 이상론으로 끝나지 않고, 20세기 전쟁터에서 실제로 구현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묵자는 인간이 서로를 공격하기보다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믿었는데, 도스는 바로 그 믿음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묵자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인간은 서로를 사랑할 때만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간 이익 충돌로 벌어지는 전쟁은 결국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습니다. 폐허와 희생만 남을 뿐입니다. 제가 뉴스를 보며 느끼는 답답함은, 이 단순한 진리를 왜 아직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화 '핵소 고지'가 주는 교훈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인간성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의 신념과 실천이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신념이 바로 묵자가 2500년 전 외쳤던 겸애와 비공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묵자의 철학이 단순히 고대 사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삶의 지침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국가 차원의 합의뿐 아니라, 개개인이 타인을 차별 없이 대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묵자가 꿈꾸던 세상, 도스가 몸으로 보여준 세상이 언젠가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총을 들지 않고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참고: https://arrowmaster.tistory.com/entry/hacksaw-ridge-conscientious-cou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