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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으로 보는 스토아 철학: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

by cinema-1 2026. 4. 24.

살아가면서 제 마음대로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자식문제였습니다. 퇴직 후 자식과의 갈등으로 지방으로 내려와 혼자 지내다 보니, 마치 화성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 예전에 보았던 영화 마션을 다시 보면서 스토아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통로가 되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연습

10년을 기다렸습니다. 자식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라면서, 퇴직 후에도 민간점검원 일을 하며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지원이 끊기자 자식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저는 매일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결국 제가 귀농귀촌을 선택한 건 도망이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것을 통제의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통제의 이분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에너지를 쏟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에픽테토스가 평생 강조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는 노예 출신 철학자로, 자신의 몸조차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내면의 태도만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구분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자식의 미래가 내 통제 밖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계속 그쪽을 향해 달려가려 했습니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도 처음엔 그랬을 겁니다. 화성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 지구와의 교신도 끊긴 채 생존 확률이 거의 없는 조건. 그런데 그가 한 첫 번째 행동은 절망이 아니라 현황 파악이었습니다.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분류하는 것, 그게 스토아적 사고의 출발점입니다. 이처럼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트릭스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이면서도 매일 밤 자신의 감정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저서 명상록(Meditations)은 자기 자신에게 쓴 철학 일기인데, 여기서 명상록이란 공개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황제 스스로를 붙들기 위해 반복해서 써 내려간 내면의 훈련 기록을 뜻합니다. 통제의 이분법을 체득하는 것이 단번에 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법

귀농 후 처음 몇 달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낯선 땅,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 집에 있는 자식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느낀 건, 감정은 통제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것을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프로하이레시스란 외부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과 내가 실제로 선택하는 행동 사이의 간격, 즉 의지적 선택 능력을 뜻합니다. 감정이 솟구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식량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감자를 화성 토양에서 재배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감정과 행동을 분리한 결과입니다. 저도 자식에 대한 걱정과 분노가 올라올 때,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일단 인식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과는 별개로,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선택의 태도는 인터스텔라에서도 극한 상황 속 결정으로 나타납니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도 비슷한 접근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CBT란 생각과 감정, 행동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부정적인 자동사고 패턴을 의식적으로 교정하는 심리치료 기법입니다. 스토아 철학이 현대 심리학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CBT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알버트 엘리스는 에픽테토스의 철학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스토아적 감정 분리를 일상에서 적용할 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이 올라올 때 즉각 반응하지 않고 3~5분 간격을 두는 습관
  •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관찰하는 훈련
  • 감정과 별개로 오늘 할 수 있는 행동 한 가지를 정하는 것

이 세 가지를 저는 귀농 후 아침마다 의식적으로 되뇌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3개월 전보다는 분명히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영화 마션으로 보는 스토아철학 '흔들리지 않는 법'을 표현한 그림

문제를 쪼개어 하나씩 해결하는 구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막연히 '자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덩어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자식에게 연락을 한 번 해볼까'라고 범위를 좁히면, 그건 할 수 있습니다.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생존한 방법도 이것과 같습니다. 그는 '어떻게 지구로 돌아갈까'를 한꺼번에 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먹을 식량, 통신 장비 수리, 이동 경로 계산, 이렇게 문제를 잘게 나누어 하나씩 처리했습니다. 이것을 스토아 철학에서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와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모르 파티란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지금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도망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위에 두 발을 딛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설국열차사회 구조 분석과도 닮아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방으로 내려오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불안이 올라왔습니다. 고요한 환경이 오히려 생각을 더 크게 증폭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불안을 덩어리째 안고 있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과제 분해(Task Decomposition)라고 합니다. 여기서 과제 분해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작고 실행 가능한 단위로 나누어 성취감을 쌓아가는 방법으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이 개념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정립한 것으로, 실제 행동 변화에 깊이 관여합니다(출처: 미국국립보건원(NIH)).

퇴직 3년째를 맞이한 지금, 마냥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자식의 미래를 제가 직접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고, 제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붙드는 것뿐입니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것도 결국 이것입니다. 외부는 통제할 수 없지만 태도는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혼자 감자를 심은 것처럼, 저는 이 낯선 땅에서 텃밭을 임대하여 감자를 심었습니다. 주말마다 각종 모종을 하나씩 심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장 답을 주지 않더라도, 지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의 기다림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 동안 제 자신만큼은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참고: https://tamadream.com/entry/%EC%98%81%ED%99%94-%EB%A7%88%EC%85%98-2015-%EB%A6%AC%EB%B7%B0-%EC%A4%84%EA%B1%B0%EB%A6%AC-%EB%82%99%EA%B4%80%EC%A3%BC%EC%9D%98%EC%99%80-%EC%97%B0%EB%8C%80-%ED%81%B4%EB%9D%BC%EC%9D%B4%EB%A7%A5%EC%8A%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