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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했지만, 혹시 내 방식만 고집한 것은 아닐까 《어바웃 타임》으로 보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by cinema-1 2026. 7. 10.

진심으로 보낸 택배 하나가 핀잔으로 돌아온 날, 저는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좋아하던 과일이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낸 것이었는데. 그때 떠올린 건 에리히 프롬의 말이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고. 어쩌면 저는 오랫동안 사랑을 열심히 했지만, 잘 하지는 못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의도가 왜 상처가 될까 — 방식의 오해

사랑했는데 상대가 상처받았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사랑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방식이 어긋났거나.

저는 오랫동안 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주면 된다고. 그래서 귀농을 준비하며 주말마다 땀 흘려 키운 채소를 박스에 담아 보냈고, 이번엔 결혼 전 같이 살 때 무척 좋아하던 과일을 택배로 부쳤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서 돌아온 건 감사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냉장고에 들어갈 데도 없는데 왜 또 보낸 거예요." 평소엔 전화도 잘 안 하던 아이가 택배 도착 문자가 오자마자 득달같이 전화해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느낀 감정은 서운함이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혹시 이건 내 위안을 위한 행동이었던 것은 아닐까.' 솔직히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게 더 정확한 진단이었습니다. 아들이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제가 주고 싶은 것을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팀이 시간을 되돌리며 깨닫는 것도 비슷합니다. 되돌릴 수 있다고 해서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냥 나란히 걸으며 아무 말 없이 함께하는 마지막 장면,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핵심입니다. 거창한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템포에 맞게 곁에 있는 것.

  • 주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 사랑의 첫 걸음입니다
  • 좋은 의도는 출발점이지,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 남편에게 "왜 보냈느냐"는 핀잔을 들었을 때 더 속상했던 건, 제 행동의 민낯을 또 한 번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요약: 사랑의 진심과 사랑의 방식은 다른 문제이며, 방식이 어긋나면 진심도 부담이 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 — 프롬의 기술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을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로 봤습니다. 여기서 '기술(Art)'이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하고 단련해야 하는 숙련된 역량을 의미합니다. 악기를 배우듯, 사랑도 배우지 않으면 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출처: Wikipedia - The Art of Loving).

프롬은 성숙한 사랑에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관심(Care), 책임(Responsibility), 존중(Respect), 이해(Knowledge)입니다. 이 가운데 제가 가장 뼈아프게 읽은 개념은 존중(Respect)이었습니다. 여기서 존중이란 상대를 내 방식대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상대도 좋아할 거라는 가정을 먼저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해(Knowledge)는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닙니다. 프롬이 말하는 이해란 상대의 현재 상황, 필요,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입니다. 원래 예민하고 까칠한 아이라는 걸 알면서도 미처 그것을 잊고 제 생각대로 행동하고 만 것, 그게 바로 이해의 부재였습니다.

프롬의 관점에서 보면 소유(possession)와 사랑은 반대 방향에 있습니다. 소유는 상대를 내 것으로 묶어두려 하고, 사랑은 상대가 스스로 성장하도록 놓아줍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필요한 건 부모가 선택한 과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습니다.

요약: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핵심은 관심·책임·존중·이해이며, 이 중 존중과 이해가 방식의 오류를 막아줍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미지

 

씨앗과 계절 — 표현의 성장

 

귀농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바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토양을 먼저 살피고, 물의 양을 조절하고, 계절의 흐름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걸, 흙을 만지면서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사랑을 더 많이 주면 관계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 그건 씨앗을 매일 두 번씩 심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나치면 뿌리가 상합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 타이밍에 맞게 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아들이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한참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보낸 과일의 의미는 지금이 아니라 훗날, 아들이 문득 떠올리는 날에 전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서운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지 아들에게 표현할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연구한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건강한 애착이란 상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기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안전한 기지(Secure Base)란 자녀가 세상으로 나아갈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의미합니다. 택배 한 상자가 그 역할을 하려면, 부담이 아니라 온기로 닿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묻는 습관이 필요합니다(출처: Simply Psychology - Attachment Theory).

이제 저는 보내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먼저 합니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니라,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랑은 무엇인가." 솔직히 이 질문 하나가 처음엔 꽤 낯설었습니다. 육십 넘어 사랑하는 방식을 다시 배우는 게 이렇게 어색한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요약: 사랑의 표현은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의 리듬에 맞게 함께 성장해야 하며, 먼저 묻는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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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질문

  1. 나는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고 있는가?
  2. 좋은 의도라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3. 오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랑은 무엇인지 먼저 물어본 적이 있는가?

자주 묻는 질문

Q. 부모가 자식한테 뭔가 해줬는데 핀잔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먼저 그 서운함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은 감정대로 인정하되, 행동의 방향은 다시 조율할 수 있습니다. "미리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일단락하는 것처럼, 작은 인정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합니다. 다음번엔 보내기 전에 한 번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달라집니다.

 

Q.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부모 자녀 관계에도 적용되나요?

A. 네, 오히려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됩니다. 프롬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따로 구분해서 설명하는데, 성숙한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독립할수록 소유에서 놓아줌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심(Care)과 존중(Respect)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 그게 이 시기 부모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입니다.

 

Q. 사랑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A. 거창한 변화가 아닙니다. 보내기 전에 한 번 물어보는 것, 전화 타이밍을 상대 기준으로 조율하는 것,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연락만 하는 것도 사랑의 방식입니다. 프롬이 말한 이해(Knowledge)는 상대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Q. 어바웃 타임이 부모 자녀 관계를 다룬 영화인가요?

A. 표면적으로는 로맨스 영화이지만, 영화의 중심축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간 여행 능력을 알려주는 장면부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걷는 장면까지, 이 영화가 가장 감동적으로 그리는 사랑은 연인이 아닌 부자지간의 일상입니다.

 

결론

그날 이후 저는 택배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틀린 결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을 멈추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표현하는 방식을 조용히 바꾸겠다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성장한다는 건 자녀보다 더 많이 주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덜 주되 더 정확하게, 내가 아닌 상대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은 결국 이 하나로 압축됩니다.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

오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요즘 뭐가 필요해?" 그 한마디가 어쩌면 택배 열 상자보다 더 잘 닿을 수 있습니다.

 

참고: 출처: Wikipedia - The Art of Loving (에리히 프롬) / 출처: Simply Psychology - Attachment Theory (존 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