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고용센터 교육을 마치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 질문이 목에 걸렸습니다. 교육을 받은 뒤에도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찾아야 하지?"라는 물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올린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2006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였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노력과 기회 사이에 놓인 간극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그토록 오래 힘들었을까
영화 속 크리스 가드너는 쉬지 않습니다. 의료기기를 들고 거리를 뛰고, 무급 인턴십 면접을 위해 경찰서 화장실에서 정장을 다려 입고, 아들을 지하철 화장실에 재웁니다. 그의 행동력은 분명 인상적입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감탄했습니다.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불편하게 따라붙었습니다. 저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하고요.
여기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센은 역량접근법(Capability Approach)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역량접근법이란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는지, 그 실질적인 가능성과 자유에 주목하는 이론적 틀입니다. 단순히 돈이 얼마나 있는지, 권리가 있는지만으로는 삶의 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센의 역량접근법은 자원과 기회를 실제 삶의 선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까지 살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하나 더 나옵니다. 바로 전환요인(Conversion Factors)입니다. 전환요인이란 같은 자원이나 교육을 제공받더라도 사람마다 그것을 실제 기회로 바꾸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에 대입해보면 이렇습니다. 크리스는 인턴십이라는 기회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접근 자체가 동등하지 않았습니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 정장을 입고 면접을 봐야 했고, 아들을 맡길 공간도 불안정했습니다. 같은 기회 앞에 선 20명이라도, 출발점의 조건은 같지 않았습니다.
크리스가 결국 기회를 잡은 것은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연히 특정 사람을 만나고, 특정 순간에 특정 조건이 맞아떨어진 덕분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지 않을 뿐입니다.

같은 교육을 받아도 우리의 기회는 정말 같은가
저는 지방에 삽니다. 고용센터의 단기 집단상담 프로그램은 지방에서는 찾기 어려워 서울까지 올라갔습니다. 긴 이동 시간, 교통비, 식비. 교육을 받았다는 결과만 보면 저도 다른 참여자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지불한 조건은 달랐습니다.
교육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교육장을 나오면 채용공고가 넘치는 환경 속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교육, 다른 기회. 이것이 전환요인의 차이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반복했던 질문들이 있습니다.
- 이력서가 부족했나
- 경력이 짧았나
- 나이 때문인가
- 노력이 부족했나
솔직히 이 질문들 앞에서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화살을 제 쪽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센의 역량접근법을 만나고 나서 질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내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나 있었는가?" 하고요.
역량(Capability)이란 단순히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센이 말하는 역량이란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의 범위입니다. 그것은 지역, 건강, 경제적 조건, 가족 상황, 이동 수단처럼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요소들에도 크게 달려 있습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의 도덕·정치철학에서의 필요(Needs in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항목은 자원의 양만이 아니라 개인이 그 자원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삶의 질 평가에서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형식적으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노력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센의 철학은 개인의 주체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실업 기간 동안 귀농 교육을 받았고, 유튜브 영상 편집을 처음 배웠고,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당장 월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범위가 조금은 넓어졌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상을 만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량의 변화입니다.
영화 제목이 The Pursuit of Happyness인 것도 이 맥락에서 다시 읽힙니다. 행복을 이미 가진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과정 자체를 제목에 담았습니다. 완성된 성공이 아니라 계속 방향을 찾아 움직이는 삶. 어쩌면 그것이 크리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취업이 되지 않을 때, 혹시 그 이유를 오직 자신에게서만 찾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능력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시간을 조금 다르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답을 드리기보다 그 질문을 함께 가져가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지금까지 취업하지 못한 이유를 너무 쉽게 나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지역, 경제적 조건, 이동거리, 경력, 가족 책임 등 실제 선택에 영향을 준 조건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직업뿐 아니라 공부, 봉사, 창작, 취미, 지역사회 활동 등 현재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셋째, 앞으로 나의 능력을 더 넓은 기회로 연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새로운 교육, 사람과의 연결, 이동수단, 정보, 기술 습득, 경제적 준비 등 나에게 필요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The Pursuit of Happyness》(2006), Columbia Pictures/Sony Pictures Entertainment. 실화를 바탕으로 한 크리스 가드너의 삶을 소재로 하며, 무급 인턴십과 치열한 경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아들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he Capability Approach. 아마르티아 센이 발전시킨 역량접근법의 핵심인 ‘실질적인 자유’, 역량(capabilities), 기능(functionings), 전환요인(conversion factors)을 설명합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Needs in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자원이나 필요의 양만이 아니라 개인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역량을 평가하는 접근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6%89%EB%B3%B5%EC%9D%84%20%EC%B0%BE%EC%95%84%EC%84%9C
https://plato.stanford.edu/entries/capability-approach/
https://plato.stanford.edu/entries/needs-moral-polit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