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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다시 말을 거는 곳이다 《남매의 여름밤》과 아리스토텔레스, 부버의 관계 철학

by cinema-1 2026. 10. 5.

여름밤, 할아버지 집 평상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닙니다. 부채 하나 들고 더위를 쫓으면서, 서로 건성으로 대꾸하면서, 그냥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저는 이상하게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무언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냥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 그게 왜 이렇게 낯설고 동시에 그리웠을까요.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스포일러보다는 그 장면이 남긴 감정에 집중해서요.

함께 있는 시간이 왜 이렇게 어색해졌을까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2020)은 옥주와 동주 남매가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모도 함께 지냅니다. 104분 동안 거대한 사건은 거의 없습니다. 밥 먹고, 집을 오가고, 서로 티격태격하고, 잠을 자고. 그게 전부라면 전부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이게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장면에서 멈추게 됐어요. 가족들이 아무 말 없이 같은 방에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화해를 선언한 것도 아닌데, 그냥 같이 있었습니다. 그 정적이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필리아(Philia)라는 개념이 떠오릅니다. 필리아란 고대 그리스어로 우정이나 애정을 뜻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좋음을 바라주는 관계 전반을 아우른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정'이라고 번역하지만, 그 시대에는 가족 사이의 관계도 이 안에 포함되었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Ethics).

핵심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부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의 좋은 삶이란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시간을 공유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가족 사이의 행복도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축적에서 자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같이 밥 먹는 것,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것,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 너무 평범해서 잊고 살았던 그것들이 사실은 관계의 뿌리였을지 모릅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과 아리스토텔레스 및 부버의 철학사상 이미지

 

자녀를 '문제'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가족에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싶을 때, 우리는 빠르게 진단 모드로 들어갑니다. 문제가 뭔지, 누가 바뀌어야 하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저도 그랬습니다. 자녀와의 관계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상담 공부를 찾아보고, 심리 상담도 받고, 강의를 듣고, 책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저는 자녀를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목록으로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 and Thou)』에서 인간의 관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 나-그것(I-It): 상대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상대의 행동을 평가하고, 어떻게 바꿀지 계산합니다.
  • 나-너(I-Thou): 상대를 고유한 존재로 만나는 방식입니다. 결과나 목적 없이 그 사람 자체와 관계를 맺습니다.

나-그것이란 상대를 하나의 기능이나 문제로 축소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반면 나-너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마주하는 태도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artin Buber).

부버의 틀로 《남매의 여름밤》을 다시 보면 영화 속 가족들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그들은 서로를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고모는 오빠에게 말을 겁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곁에 그냥 있습니다. 완벽한 나-너의 관계라고 하기엔 크고 작은 오해가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대상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춘 이유는 바로 그 조심스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저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가 아니라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사람일까'를 보는 시선. 그게 관계를 다르게 만든다는 걸, 영화가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밥 한 끼가 철학이 되는 이유

돌봄 윤리(Ethics of Care)라는 철학적 입장이 있습니다. 돌봄 윤리란 도덕적 삶을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실제 관계 속에서 서로의 필요에 응답하는 행위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캐롤 길리건이나 넬 나딩스 같은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이 개념은, 사랑이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돌봄은 반드시 거창한 희생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가족과 밥을 같이 먹는 것,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평소보다 말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괜찮아?"라고 한 번 묻는 것. 이 모든 것이 돌봄입니다.

제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저는 한동안 가족에게 좋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말보다 그냥 같이 있는 시간이 더 힘이 세다는 걸 느꼈습니다. 거창하게 대화를 잡고 앉아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해봐"가 아니라, 그냥 냉장고 열고 "뭐 먹을래" 한마디가 더 많은 걸 녹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 부버의 나-너, 그리고 돌봄 윤리. 이 세 철학이 모이는 자리에는 의외로 밥상이 있습니다. 매우 소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관계의 형태입니다.

《남매의 여름밤》이 오래 기억되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는 가족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주는 인물이 없습니다. 명쾌한 답도 없습니다. 그 대신 가족들이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시간이 쌓이면서 관계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나는 오늘 가족에게 다시 말을 걸었는가. 완벽한 화해가 아니어도 됩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도 됩니다. 그래도 오늘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면, 그 관계에는 아직 다음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다가가는 그 작은 용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1. 나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너무 앞서서, 정작 가족의 말을 듣는 시간은 놓치고 있지 않은가?
  2. 최근 가족과 나눈 말 중에서 아주 평범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이었는가?
  3. 지금 내 가족에게 필요한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이번 주에 함께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는 무엇일까?

참고 자료

  • 한국영상자료원, 「남매의 여름밤」 — 작품 정보와 줄거리, 윤단비 감독 연출작 소개.
  • 영화진흥위원회,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관련 자료.
  • 윤단비 감독 인터뷰 — 가족과 일상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 배경에 관한 감독의 설명.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Ethics” —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와 가족·우정·행복의 관계.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artin Buber” — 부버의 ‘나-너(I–Thou)’와 대화적 관계에 관한 설명.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eminist Ethics” 및 “Personal Relationship Goods” — 돌봄 윤리와 관계 속 돌봄의 철학적 의미.

참고: https://namu.wiki/w/%EB%82%A8%EB%A7%A4%EC%9D%98%20%EC%97%AC%EB%A6%84%EB%B0%A4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istotle-ethics/
https://plato.stanford.edu/entries/bu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