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짐을 정리하던 날이었습니다. 남편 차에 박스를 몇 개 싣고 시어머니 댁을 들렀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일찍 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직장 문제로 저녁도 거르고 방에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같이 밥 먹자고 몇 번을 권했는데도 결국 먹을 거리를 포장해달라고 하여 갖다 주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이상하게도 섭섭하기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뭔가를 부탁하긴 했구나.' 아주 작은 것인데, 그게 왜 그렇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는지. 나중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를 다시 보다가 그 감정의 이름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됩니다.
바라던 삶이 어긋날 때,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주인공 료타가 그냥 한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한때 문학상을 받은 작가였는데 지금은 사설탐정으로 생계를 잇고,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양육비도 제때 못 내면서 전처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근데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달랐습니다. 저도 어느 순간 료타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요.
영화는 단 한 번도 료타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를 가만히 보여줄 뿐입니다. 원하는 삶의 그림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의 거리를. 그 거리를 좁히려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들을.
불교에는 무상(無常, 산스크리트어로 Anitya[아니티야], 팔리어로는 Anicca[아니짜]))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무상이란 모든 존재와 현상은 고정된 상태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도, 지금 이 관계도, 지금 이 감정도 언제까지나 이 모습은 아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정작 소중한 걸 잃었을 때 이 말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료타는 과거의 자신을 놓지 못합니다. 문학상을 받던 시절, 가족이 함께였던 시절.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그 시절도 영영 끝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계속 그 자리를 맴돕니다. 불교적으로 읽자면, 변한 현실을 변하기 전의 기준으로 계속 재려 하는 것입니다.
출처: 팔리 경전 《아비담마》에 기반한 무상(Anicca) 해설
집착이라는 것, 포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
제가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아들 신노스케에게 료타가 이것저것 사주고 함께 놀아주면서 은근히 기대를 거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잘해주면 네 마음이 돌아오겠지.' 료타는 그 기대를 숨기지만 숨기지 못합니다. 아이는 그걸 느끼고, 조금씩 거리를 둡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을 갈애(渴愛, Tanha)와 집착(執着, Upadana)으로 설명합니다. 갈애란 어떤 상태나 관계를 강하게 원하는 마음이고, 집착이란 그것을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한다고 놓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중요한 건 이렇습니다. 불교가 문제 삼는 건 원하는 마음 자체가 아닙니다. 그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삶 전체가 실패라고 단정하는 순간이 괴로움의 씨앗이 된다는 것입니다.
료타를 보면서 저는 우리가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런 기대들이요.
- 자녀가 내 걱정을 알아줄 것이다
- 함께 밥을 먹으면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 충분히 노력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대들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정답이 되는 순간, 현재 가능한 관계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식사를 거절한 아들이 그날 포장을 부탁했다는 것, 그 작은 사실이 저에게 다행스러웠던 이유가 아마 그것일 겁니다. 기대하던 방식이 아니었지만, 연결은 끊기지 않았으니까요.
출처: 틱낫한, 《화해: 내 안의 상처 입은 아이 치유하기》 — 집착과 갈애에 대한 불교적 해석

태풍이 지나가도 삶은 이어집니다
영화 후반, 태풍이 몰아치는 밤에 료타와 전처 교코, 아들 신노스케, 그리고 어머니가 한 공간에 모입니다. 억지로 계획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냥 태풍이 온 것뿐입니다. 그들은 그 밤을 함께 보냅니다. 완벽한 화해는 없습니다. 료타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고, 가족이 다시 합쳐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밤이 가장 가슴에 남았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태풍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영화를 자신의 가족 영화 중 최고 완성도라고 평가하고 한동안 가족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했던 이유가, 저는 여기에 있다고 읽힙니다. 이 영화는 가족을 이상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계의 가능성을 닫지도 않습니다.
무상을 이해한다는 건 이런 뜻일지 모릅니다.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달라진 현실 안에서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건 포기가 아닙니다. 원하던 그림에서 눈을 들어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보는 일입니다.
저는 아직 구직을 고민 중이고, 귀농도 선택지에 있습니다. 아들이 언제 마음을 열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거라는 생각, 그것만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질문을 드리며 마칩니다. 당신이 되찾으려 하는 관계의 모습, 그것은 과거의 방식이어야만 할까요?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볼 질문 3가지
- 과거의 성공이나 가족관계가 지금과 달라졌다는 이유로 현재의 삶을 실패라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이어 갈 수 있는 관계는 무엇일까요?
-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도 결과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전부 결정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참고자료
[영화 자료]
- Festival de Cannes, Umi Yorimo Mada Fukaku (After the Storm), 2016
https://www.festival-cannes.com/en/f/umi-yorimo-mada-fukaku/ - Festival de Cannes, “Interview with Kore-Eda Hirokazu about Umi Yorimo Mada Fukaku (After the Storm)”
https://www.festival-cannes.com/en/2016/interview-with-kore-eda-hirokazu-about-umi-yorimo-mada-fukaku-after-the-storm/
[철학 자료]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Buddha”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pr2020/entries/buddha/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ind in Indian Buddhist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mind-indian-buddhism/
참고: https://namu.wiki/w/%ED%83%9C%ED%92%8D%EC%9D%B4%20%EC%A7%80%EB%82%98%EA%B0%80%EA%B3%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