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영화 《킹메이커》가 선거철마다 다시 주목받는 이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핵심 개념
정치에서 “목적과 수단”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왜 권력은 인간을 변하게 만드는가
현실 정치와 이상주의의 충돌
동양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 즉 이름과 실체가 일치해야 한다는 사유입니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거의 정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름이 아니라 결과가 군주를 정당화한다고 보았습니다. 《킹메이커》를 처음 보고 나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바로 이 두 철학의 충돌이었습니다. 같은 인간을 두고, 동양과 서양은 왜 이렇게 다른 답을 내놓는 걸까요.
이 영화가 품은 철학적 질문 — 이상과 현실은 애초에 함께 설 수 있는가
《킹메이커》에서 선거 전략가 엄창록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입니다. 그는 대중이 정책보다 이미지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승리를 위해 필요한 계산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묘하게 불편했습니다. 그의 논리가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하게 개입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사랑받는 군주보다 두려운 군주에게 더 쉽게 복종한다." 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냉소가 아닙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16세기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이 끊임없이 분열하고 침략당하던 시대였고, 그는 이상적인 통치자보다 살아남는 통치자를 연구했습니다. 이른바 비르투(virtù) — 단순한 덕이 아니라 상황을 장악하는 역량과 결단력 — 가 군주의 핵심 자질이라고 본 것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그런데 흥미로운 건, 서양 철학이 마키아벨리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칸트는 결과와 무관하게 행위 자체의 도덕성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 — 즉, "네가 취하는 행동의 원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명령 — 은 엄창록의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정언명령이란 조건 없이 따라야 하는 도덕 법칙으로, 어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동양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논쟁은 더 복잡해집니다.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란 무엇보다 이름, 즉 역할과 실체의 일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 이 질서가 흔들릴 때 사회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엄창록의 이미지 메이킹은 이 기준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이름과 실체를 분리하는 행위입니다. 실체와 무관하게 보이는 것을 조작하는 것이니까요.
영화는 이 두 철학 사이에서 주인공들을 흔들립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멈칫했습니다. 영화 속 정치인 김운범이 처음부터 부패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 그가 진심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는 점이 서사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심이 현실의 논리에 조금씩 잠식되는 과정 —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정치 드라마가 아닌 이유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철학 영화 이야기
1️⃣ 《1987》 × 존 롤스
→ 민주주의는 왜 쉽게 무너질 수 있을까
2️⃣ 《택시운전사》 × 한나 아렌트
→ 왜 평범한 사람은 역사를 움직이게 되는가
3️⃣ 《더 킹》 × 니체
→ 인간은 왜 권력을 욕망하는가
동서양 사상가의 답변 비교 — 양심은 권력 앞에서 어디에 서는가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동서양의 사상가들이 권력의 문제에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그 핵심 대비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마키아벨리(서양, 15~16세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군주는 상황에 따라 사자처럼 강하고 여우처럼 교활해야 한다.
- 칸트(서양, 18세기): 좋은 결과를 위해서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도덕은 결과가 아닌 행위의 원칙에 달려 있다.
- 공자(동양, 기원전 5세기): 정치는 이름과 실체의 일치에서 시작한다. 통치자가 먼저 바르게 서야 나라가 바르게 선다.
- 맹자(동양, 기원전 4세기): 민심이 천심이다. 왕이 덕을 잃으면 백성은 그를 따를 의무가 없다(역성혁명).
제 해석으로는, 이 네 사상가 중 영화 속 엄창록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마키아벨리이고, 영화가 가장 아프게 묻고 있는 것은 맹자의 질문입니다. 민심을 얻기 위해 민심을 조작한 자가 과연 민심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론(緣起論)도 이 영화를 읽는 흥미로운 렌즈가 됩니다. 연기론이란 모든 현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의존하며 발생한다는 사유입니다. 엄창록이 구사하는 전략 하나하나는 결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전략은 유권자의 두려움과 욕망, 언론의 구조, 반대 진영의 약점, 그리고 김운범의 이상주의가 서로 얽혀 있는 장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권력의 내러티브는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 이것이 연기론이 이 영화에 던지는 통찰입니다.
도교의 관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노자는 무위(無爲) — 억지로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르는 것 — 를 이상적 통치의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성인은 다투지 않기 때문에 세상 누구도 그와 다툴 수 없다"는 《도덕경》의 구절은 엄창록의 정치 공작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습니다. 하지만 노자의 방식이 현실 민주주의에서 통할 수 있는지는 — 저도 솔직히 확신이 없습니다. 영화 역시 그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킹메이커》는 2022년 개봉 당시 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인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단순한 정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크린 안에서 자신들의 질문을 보았을 겁니다. 옳은 목적을 위해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인 제가 어느 편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감독이 설계한 미장센(mise-en-scène) — 화면 구성과 연출 전체를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의미의 장 — 의 핵심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악인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선택들뿐입니다.
권력의 문제를 두고 동양과 서양의 철학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 둘이 이상하게도 하나의 지점에서 만납니다. 정치는 결국 인간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인간은 권력 앞에서 너무도 쉽게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도, 공자도, 맹자도, 칸트도 그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킹메이커》는 그 흔들림을 2시간 동안 아주 가까이에서 보여줍니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라면 어느 지점에서 멈췄을까요.
🔎 생각해볼 질문
결과가 좋다면 과정의 문제는 괜찮은 걸까?
권력은 인간을 바꾸는가,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가?
나는 정치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참고: https://namu.wiki/w/%ED%82%B9%EB%A9%94%EC%9D%B4%EC%BB%A4(%ED%95%9C%EA%B5%AD%20%EC%98%81%ED%99%94)
https://plato.stanford.edu/entries/machiavelli/
https://www.kobi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