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등장하는 "주님,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우리 마음은 불안합니다"라는 문장은 160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인의 마음을 꿰뚫습니다. 저 역시 자식을 키우며 이 문장의 의미를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성공한 것 같은데도 공허하고,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안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은총과 자유의지: 통제에서 신뢰로
아우구스티누스는 4세기 교부철학(Patristic Philosophy)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여기서 교부철학이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이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한 철학 사조를 의미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다 문득 신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여 중세 1000년을 지배할 신중심 사상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출처: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그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은총(Grace)'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왜곡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질서가 뒤바뀐 사랑(ordo amoris)'이라 표현했는데, 쉽게 말해 우리가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는 처음 이 사상을 접했을 때 인간을 너무 나약하게 본다는 생각에 몹시 거슬렸습니다. 자유의지마저 부정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나 제 자식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이 철학의 일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것을 시킵니다. 이것 배워라, 저것 해봐라.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부모의 발목을 잡습니다. 자식은 나중에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시켜서 한 거다"라며 부모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부모의 기대와 바람은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타인을 통제하려는 시도입니다.
테렌스 말릭 감독의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는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구현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자연의 길(Way of Nature)'과 '은총의 길(Way of Grace)'이라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대비시킵니다. 자연의 길은 경쟁, 힘, 성취, 자기 주장을 의미하고, 은총의 길은 용서, 사랑, 겸손, 수용을 뜻합니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 상징되는 이 두 길 사이에서 주인공 잭은 평생 방황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자식은 절대 부모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끝없이 자식을 옥죄고 통제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자식을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 불안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던 겁니다.
자식 교육과 내려놓음: 통제의 역설
2023년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부모의 78%가 자녀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교육부).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을 통제하려 애쓰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버리고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말은 거대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나의 하찮은 자유의지가 다른 사람, 특히 내 자식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식이 제 뜻대로 커주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난 뒤에야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것이 결국은 자식을 통제하는 것이고, 그것이 오히려 원망과 책임 전가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에 대한 독특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는 과거는 기억 속에, 미래는 기대 속에, 현재는 주의(attention) 속에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시간관(Concept of Time)을 자식 교육에 적용해보면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관이란 시간의 본질과 흐름을 이해하는 철학적 관점을 의미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계획합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적인 삶. 그런데 그것은 부모의 '기대' 속에만 존재하는 미래입니다. 자식의 현재, 즉 지금 이 순간 자식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는 보지 못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자식의 '현재'가 아니라 우리의 '기대'를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은 자식을 탓하지 말고, 제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자식에게 부담을 주었던 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은총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통제하려는 힘이 아니라 내려놓는 용기 말입니다.
정리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1600년 전 사상이지만 현대 부모의 고민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자식을 완벽하게 키우려는 집착,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안,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저는 이제 자식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도록 지켜보려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배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