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Reformed로 보는 키르케고르의 실존 회복 (신앞의 단독자, 불안, 도약)
솔직히 저는 제 SNS 프로필을 꾸미면서 제가 누구인지 고민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러 오픈채팅방마다 다른 닉네임을 쓰고, 상황에 맞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린 글의 조회수가 나오지 않거나 반응이 없을 때 느껴지는 그 불안함은 대체 뭘까요? 키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 선 단독자(The Single Individual)'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제가 겪던 그 불안의 정체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군중 속에 숨어 살면서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존적 불안의 진짜 의미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불안(Angst)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불안이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는 본질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 선택의 무게가 불안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채팅방에서 다른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느꼈던 불안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떤 프로필을 보여줄지, 어떤 말투를 쓸지, 어떤 이모티콘을 골라야 사람들이 좋아할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들이 제 불안을 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키르케고르는 이 불안이 오히려 자유의 증거라고 봤습니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실존(Existence)이란 본질에 앞서는 개별 인간의 구체적 존재 방식을 뜻합니다. 여기서 실존이란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의미합니다. 저는 SNS에서 조회수를 걱정하고 반응을 기다리며 실존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개념은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입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개인이 집단과 제도 속에 매몰되던 시기였습니다(출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개인이 집단이나 교회 조직이 아닌, 신 앞에서 홀로 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중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바로 이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제가 겪은 불안의 패턴을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 생각대로 글을 쓸 때보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고민할 때 불안이 더 컸습니다. 이는 제가 저 자신의 주체성을 버리고 군중의 기준에 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키르케고르가 경고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습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몇 가지 핵심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불안을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닌 자신의 선택을 확인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이 믿는 가치에 따라 결정하기
- 완벽한 확신이 없어도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기
신앙의 도약이 의미하는 것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이 바로 '신앙의 도약(Leap of Faith)'입니다. 여기서 도약이란 논리적 근거나 증명 없이 믿음을 선택하는 결단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100% 확신이 서지 않아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영화 《First Reformed》의 톨러 목사는 이러한 도약의 순간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들의 죽음, 신앙에 대한 회의, 환경 파괴에 대한 절망이 그를 압도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목사가 교회 제도의 위선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 앞에서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절망(Despair)은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울증과는 다릅니다. 여기서 절망이란 자기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상태, 즉 자신의 실존을 외면하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과장된 프로필을 만들고 여러 가면을 쓰면서 살았던 것도 일종의 절망이었습니다. 진짜 제 모습으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저를 가짜로 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2024년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SNS 사용자의 68.3%가 온라인 정체성과 실제 자아 사이의 괴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경험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이는 키르케고르가 19세기에 지적했던 문제가 현대에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앙의 도약은 반드시 종교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것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모든 순간에 적용됩니다. 저는 최근 조회수를 의식하지 않고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논리적으로 계산하면 손해일 수 있지만, 제 양심 앞에서는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상 속의 작은 도약이었습니다.
영화 속 톨러 목사처럼 극단적인 선택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작은 도약을 경험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대로 따라갈지, 내 방식대로 살지 선택하는 모든 순간이 도약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실존을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선택하지 않고 군중 속에 숨는 것은 실존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변화를 경험한 이후 달라진 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타인의 평가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었습니다. 둘째, 제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셋째, 역설적이게도 더 진솔해지니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졌습니다. 이는 키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통찰이 옳았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제 여러 채팅방에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인 척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한 작은 실존의 회복입니다. 불안은 여전히 있지만, 그 불안을 제 자유의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오히려 삶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키르케고르가 19세기에 던진 질문이 2026년을 사는 저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