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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사용하는 창작자는 어떻게 자기 글의 독창성을 지킬 것인가’ 《오마주》와 《동주》가 묻는 창작자의 자리

cinema-1 2026. 10. 10. 05:11

"나는 왜 이것을 쓰는가." 이 질문이 떠오른 건 화면 앞이 아니라, 글이 완성된 직후였습니다. AI가 정리해준 문장을 읽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문장은 매끄러웠고, 흐름도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설었습니다. 《오마주》의 지완과 《동주》의 윤동주,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창작자가 같은 질문 앞에 섰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오래된 필름 앞에서, 지완은 무엇을 보았는가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2022년 개봉한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에서 중년의 여성 감독 지완은 1962년 홍은원 감독의 영화 《여판사》를 복원하는 일을 맡습니다. 거창한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 일이 생겼습니다.

지완이 낡은 필름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리도 없고, 대사도 없이, 그저 흐릿한 화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지완이 보고 있는 것이 필름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라진 사람을 보고, 잊힌 시간을 보고, 어쩌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자신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오마주(Hommage)란 원래 프랑스어로 '경의를 표한다'는 뜻입니다. 영화에서는 선배 창작자의 작품이나 방식을 의도적으로 계승·참조하는 표현 기법을 가리킵니다. 지완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행위 자체가 오마주이지만, 동시에 그 과정이 지완 자신의 창작 의지를 다시 불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이 장면에서 한나 아렌트의 탄생성(Natality)이 겹쳐 보입니다. 탄생성이란 인간이 세계에 태어남으로써 그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아렌트는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새로운 시작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annah Arendt). 지완도 그렇습니다. 실패한 영화감독이 아니라, 여전히 필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다시 발견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 영화가 그냥 중년의 감성을 담은 조용한 드라마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보고 난 후 며칠이 지나도 그 장면이 남았습니다. 왜 남았는지 생각해보니, 지완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마주>와 <동주>의 창작자의 철학사상 이미지

 

 

윤동주는 왜 부끄럽다고 했을까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흑백으로 찍혔습니다. 그 선택이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굳이 흑백일 이유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알게 됩니다. 흑백이라서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표정이고, 눈빛이고, 망설임입니다.

윤동주가 자신의 시를 읽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시를 크게 낭독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자신에게 읽어줍니다. 그 표정에는 자랑스러움보다 불편함이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춘 이유는, 그가 자신의 글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글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닿아 있는지를 계속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윤동주의 시만 알고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 채 시를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밝혔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한 것입니다. 시인이 어떤 환경 속에서 그 문장들을 썼는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과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실존주의(Existentialism)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 없이 태어나며, 자신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인간을 '아직 끝나지 않은 존재'로 보았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닫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imone de Beauvoir). 윤동주도, 지완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저도 그 '아직 끝나지 않음'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AI가 문장을 써줬다면, 그 글은 누구의 것인가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기쁨보다 무거움이 먼저 왔습니다. 그리고 곧 이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저는 AI와 함께 글을 씁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이야기하면 AI가 정리하고, 질문을 던지고, 문장의 구조를 잡아줍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 글일까요.

이 물음을 정리하는 데 칸트의 자율성(Autonomy) 개념이 도움이 됐습니다. 자율성이란 외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칸트는 이 능력이 인간의 존엄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도구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향을 내가 결정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로서의 판단이 남아 있는지 아닌지는 다음 질문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무슨 이야기를 쓸지 내가 결정했는가
  • AI가 만든 문장 중 어떤 표현을 남기고 어떤 표현을 버릴지 내가 판단했는가
  • 이 글이 정말 내 경험과 닿아 있는지 내가 확인했는가
  • 사실관계를 내가 검토했는가
  • 이 글을 왜 쓰는지 내가 알고 있는가

이 다섯 가지에 답할 수 있다면, AI가 문장을 다듬었다는 사실만으로 창작자의 자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유창한 문장도 제 글이라고 말하기 어렵겠지요.

AI에게 쓰기를 맡기는 것과 AI와 함께 쓰는 것 사이의 거리는, 그 판단을 내가 쥐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완이 필름을 복원할 때 혼자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았던 것처럼, 윤동주가 시를 쓸 때 진공 속에 홀로 있지 않았던 것처럼, 창작은 늘 무언가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오마주》의 지완은 끝내 대단한 영화감독이 되지 않습니다. 《동주》의 윤동주는 시집 한 권 제대로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창작자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작가란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늘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1. 나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2.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끝까지 내가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3.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기록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면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

참고 자료

  • 신수원 감독, 《오마주》 관련 인터뷰 및 작품 정보. 영화는 중년 여성 영화감독 지완이 홍은원의 1962년작 《여판사》를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잊힌 여성 영화인과 창작의 의미를 돌아보는 이야기로 소개됩니다.
  •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 관련 인터뷰. 감독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함께 바라보며, 윤동주와 송몽규의 ‘결과’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간 과정에도 주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annah Arendt” — 탄생성(natality), 새로운 시작, 행위(action)의 관계.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Kant’s Moral Philosophy”, “Autonomy in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 자율성과 자기결정의 의미.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imone de Beauvoir” — 『노년』에서 프로젝트와 의미 있는 활동, 노년의 타자화에 관한 논의.
  • Google Search Central, “Creating Helpful, Reliable, People-First Content” 및 “Google Search's Guidance on Generative AI Content” — AI 활용 자체보다 사람에게 유용하고 독창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콘텐츠인지가 중요하며, 가치 없는 대량 자동생성 콘텐츠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공식 안내.

참고: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endt/
https://plato.stanford.edu/entries/beauvoir/
https://namu.wiki/w/%EB%8F%99%EC%A3%BC%28%EC%98%81%ED%99%9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