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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으로 보는 사회 구조: 보부아르의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cinema-1 2026. 4. 21. 05:27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지는가
보부아르의 ‘타자’ 개념 쉽게 이해하기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자유로운가

 

퇴직 후 처음으로 "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저는 텃밭 앞에 서서 멍하니 굳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삽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30년 동안 당연하게 해온 집안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시 꺼내든 영화가 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절반은 과거의 제 이야기, 절반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처럼 다가왔습니다. 주인공 김지영의 삶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합니다.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실의 문제는 매트릭스에서도 '보이지 않는 구조’라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사회화: 우리는 어떻게 '역할'로 만들어졌는가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회화(socialization)란 개인이 태어난 후 가정, 학교, 미디어, 또래 집단을 통해 특정 역할과 규범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이 구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30년 동안 퇴근 후 남편과 아들들의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돌리는 일이 당연했습니다. "여자니까", "엄마니까"라는 말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저 스스로 그 틀 안에 있었습니다. 가사노동의 비가시성(invisibility of domestic labor)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사노동의 비가시성이란 집안일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김지영이 느끼는 답답함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용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 "저건 내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답답하지"라는 감정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그 감정 자체가 이미 구조를 감지한 신호였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2022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에서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약 3.5배에 달합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숫자로 확인하니 더 선명해졌습니다. 개인의 게으름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패턴이라는 증거입니다.

 

성평등가족부의 정책안내서 표지 그림

타자성: 누가 기준이 되고, 누가 정의당하는가

보부아르는 사회 구조를 설명할 때 '타자(The Other)'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타자성(otherness)이란 어떤 집단이 사회의 기준점이 되는 반면, 다른 집단은 그 기준에 의해 규정되고 정의되는 현상을 말합니다.영화 속 김지영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는 장면이 바로 이 타자성의 구체적인 묘사입니다.이러한 구조는 설국열차의 계급 구조와도 매우 유사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60대 이상 부부를 보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드뭅니다. 제 주변만 해도 "○○ 아빠", "○○ 엄마"가 이름을 대신합니다. 직장을 다니면 이름이 불리지만, 살림만 하는 경우 이름은 사라지고 역할만 남습니다. 이름 없이 역할로만 존재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꽤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퇴직 후 귀농귀촌 교육을 받으며 "나"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느낀 기묘한 불안감이 바로 이것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30년간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을 내려놓고 주체(subject)로 서려 하는 순간, 다리가 떨렸습니다. 여기서 주체란 타인의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역할이 곧 정체성이 되어버린 사람이 역할 밖으로 나올 때 겪는 공허함, 김지영의 이야기가 그 공허함을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보부아르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우리는 만들어진다'를 표현한 그림

 

 

보부아르가 말한 타자성의 구조가 얼마나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지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 중 '육아 및 가사'의 비율이 여전히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것이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구조가 선택지를 그렇게 배치해놓은 결과라는 시각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타자성의 문제가 심각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기 쉽다
  • 내면화된 역할은 스스로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 역할에서 벗어나려 할 때 내부 저항(불안감, 죄책감)이 먼저 나타난다
  • 세대 간 전수를 통해 구조가 재생산된다

주체적 삶: 평등과 독립 사이에서 찾은 현실적 답

귀농 3년차가 된 지금, 저는 처음의 결심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독립과 자립을 꿈꾸며 텃밭 앞에 섰을 때, 여성 혼자 농사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체력적으로 버거운지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젠더 역할 분업(gender division of labor), 즉 남성과 여성이 각자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나누는 방식은 단순히 차별의 산물이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젠더 역할 분업이란 생물학적, 사회적 특성에 따라 가정 안팎의 역할이 구분되어 수행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문제는 분업 자체가 아니라, 그 분업이 강제적이고 일방적이며 한쪽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을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보부아르는 "인식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이처럼 현실을 의심하는 시선은 트루먼 쇼에서도 핵심 메시지로 등장합니다.

무조건 같은 것을 같은 양으로 나누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는 생각과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각자의 몫을 인정하며, 그 몫을 스스로 선택하고 수행하는 것이 진짜 주체적인 삶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아들이 혼자 독립해서 요리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결정권이란 외부의 강압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김지영이 결국 원했던 것도 거창한 해방이 아니라 이 자기결정권 하나였을지 모릅니다. 역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 그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지금 저는 민간점검원으로 약간의 소득을 창출하면서 텃밭도 일구고 있습니다. 완전한 자립은 아니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나는 지금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택당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한번쯤 서보는 것, 그게 이 영화를 다시 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더 이상 김지영이 겪는 무기력함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구조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 각자의 몫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 변화는 이미 조금씩 시작되고 있습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어떤 기준 속에서 선택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 ‘나의 것’인가?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 중 의심해본 것은 무엇인가?


참고: https://tip-home.com/entry/82%EB%85%84%EC%83%9D-%EA%B9%80%EC%A7%80%EC%98%81-%EC%A4%84%EA%B1%B0%EB%A6%AC%EC%99%80-%EC%9D%98%EB%AF%B8-%EC%9D%BC%EC%83%81-%EC%86%8D-%EA%B5%AC%EC%A1%B0-%EC%82%AC%ED%9A%8C%EC%A0%81-%EC%A7%88%EB%AC%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