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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의 '자유'가 외면한 실존: 영화 <노마드랜드>의 펀이 남 같지 않은 이유

cinema-1 2026. 4. 8. 05:58

평생 '열심히 살면 나아질 것'이라는 투박한 믿음 하나로 버텨온 세월이었습니다. 60년대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공부를 무기 삼아 산업화의 파도를 넘었고, 30년 직장 생활을 훈장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퇴직 후 마주한 현실은 그 견고했던 믿음을 소리 없이 부숴놓았습니다. 영화 <노마드랜드(2020)>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건, 주인공 펀(Fern)이 밴(Van)에 실었던 짐들이 마치 제가 평생 짊어져 온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이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시장 원리에 맡기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체제 아래서,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노동 시장에서 '60년대생'이라는 숫자가 효율성이라는 잣대에 의해 배제되고, 누군가 '15억 선물'로 자산을 증식할 때 누군가는 단기 계약직의 불안을 견뎌야 하는 현실은 이 자유가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오늘은 영화 속 아마존 물류 창고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와 저의 재취업 현장을 겹쳐 보며, 신자유주의가 설계한 이 촘촘한 노동 시장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공평한 출발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길 위로 내몰린 노마드의 방랑은 과연 자발적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구조가 강요한 막다른 골목이었을까요?

신자유주의가 설계한 노동시장, 그 안에서 살아남기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시장 경쟁에 모든 것을 맡길 때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된다는 사상입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 자본과 시장 원리에 자원 배분을 일임하는 경제 체제를 말합니다. 이 논리 안에서 실패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됩니다.

제가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자격증까지 땄는데도 연령차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노동 시장에서 이른바 '60년대생'이라는 숫자는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쉽게 배제됩니다. 프리드먼의 논리대로라면 이건 제 경쟁력 부족의 결과겠지만, 저는 그 설명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펀(Fern)은 경제 붕괴로 삶의 터전을 잃고 밴(Van)에 짐을 실어 길을 떠납니다. 일부에서는 그녀의 삶을 자발적 노마드(Nomad), 즉 자유를 선택한 현대판 유목민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실제로 보여주는 건 다릅니다. 그녀가 일하는 아마존(Amazon) 물류 창고에서의 단기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여기서 단기 노동이란 고용 보장 없이 특정 시즌에만 계약을 맺고 일하는 형태로,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고용 유연성(Employment Flexibility) 전략입니다. 고용 유연성이란 기업이 인력을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구조를 뜻하는데, 이 편의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불안정으로 전가됩니다. 저 역시 퇴직 후 최저 시급을 받으며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다 사고까지 당했습니다. 그때 제가 처한 상황이 영화 속 장면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보는 내내 손발이 저렸습니다.

노동시장 내 불평등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령차별(Ageism): 50대 이후 구직자에게 사실상 진입 장벽이 작동
  • 고용 유연성 남용: 기업의 비용 절감이 개인의 고용 불안으로 전가
  • 사회적 안전망 부재: 단기 계약직에는 실업급여·산재 적용이 제한적
  • 자산 기반 격차: 초기 자본 없이는 자산 증식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려움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 중 임시·일용직 비율은 30%를 넘어섰습니다(출처: 통계청).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노년에 가장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현실이 수치로 확인되는 셈입니다. 아래 사진은 단기 계약직인 미세먼지 감시원으로서 시스템(차량) 안에서 미세먼지 알리미를 촬영하면서 세상을 감시하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에 갇혀 있기도 한 현대인의 노마드적 삶을 보여줍니다.

 

시스템(차량) 안에서 미세먼지 알리미를 촬영한 사진

자산 양극화의 민낯, 그리고 출구

퇴직 전 어느 날 모임 회식 자리에서 한 회원이 남편이 15억 원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직접 들었는데도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이미 그 전부터 외제차 여러 대, 귀금속, 부동산 이야기가 오갔고, 저는 매달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을 이어가던 처지였습니다. 그 분은 그 15억으로 주식을 사들였고 지금은 100억이 넘는 자산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한때 부동산에 소액을 빚까지 내어 투자해봤지만 손실을 봤습니다. 주식을 몇 주 사면 곧바로 하락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이건 제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자산 양극화(Asset Polarization)란 자산을 이미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초기 자본이 있어야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구조에서, 월급으로만 생활하는 사람은 같은 시간을 살아도 상대적 박탈감만 커집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지속적으로 앞지르면 자산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자본수익률이란 부동산·주식 등 자산을 보유했을 때 얻는 수익의 비율을 뜻하며, 노동으로 얻는 임금 상승률보다 이 수치가 높을 때 격차는 구조적으로 고착됩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 가계 순자산 상위 20%와 하위 20% 간 격차는 꾸준히 확대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은행).

블로그로 온라인 수익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도 솔직히 이 불안에서 나온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수익화 승인 기준이 강화되면서 계속 반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시도해도 벽이 느껴질 때, 자본주의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계약이 끝나면 농촌으로 내려가 농작물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땅 한 평 없는 현실에서 막막하긴 하지만, 이게 도피가 아니라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미취업 자녀와 결혼을 앞둔 자녀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것도 사실이지만, 방향이라도 정해두면 조금은 덜 흔들립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이라면 지금 당장 거창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선택지를 하나씩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귀농·귀촌 정보는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종합센터에서 초기 비용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서, 땅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경로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프리드먼의 시장 논리가 틀렸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 논리가 전제하는 '공평한 출발선'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 지금 저에게는 더 현실적인 출발입니다. 노마드랜드의 펀이 길 위에서도 멈추지 않았듯, 저도 이 막막함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는 중입니다. 완벽한 해답은 없겠지만, 오늘보다 내일 한 발짝이라도 더 선명한 선택을 하는 것,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오늘도 어떤 선택을 하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불법소각 점검을 하다 발견한 양쪽길로 갈라지는등산로 표지 사진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think-8.tistory.com/entry/%EB%85%B8%EB%A7%88%EB%93%9C%EB%9E%9C%EB%93%9CNomadland-2021-%EB%96%A0%EB%8F%84%EB%8A%94-%EC%82%B6-%EC%86%8D%EC%97%90%EC%84%9C%EB%8F%84-%EC%82%B6%EC%9D%80-%EA%B3%84%EC%86%8D%EB%90%9C%EB%8B%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