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지나간 텃밭에서 기후위기를 만났습니다 《2040》 × 폴 W. 테일러 × 알도 레오폴드
우리는 자연을 소유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건지도 모릅니다. 2019년 호주 감독 데이먼 가모가 만든 다큐멘터리 《2040》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텃밭에 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폭염과 폭우 사이에서 뜻밖의 답을 만났습니다.
풀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 생명중심주의가 텃밭에서 말을 걸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짜증이 났습니다.
폭염이 지나간 텃밭에 오랜만에 내려갔더니, 정성껏 키우던 작물들은 말라버린 채였고 그 자리에 잡초만 무릎 높이로 자라 있었습니다. 다시 씨앗을 심고, 친구에게 얻어온 배추 모종에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폭우가 쏟아졌고, 다시 찾아간 밭에서는 씨앗이 싹을 틔우는 옆에서 잡초가 제 키를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풀도 살고 싶었던 것 아닌가. 벌레도 그저 살아가고 있었던 것 아닌가.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 철학자 폴 W. 테일러(Paul W. Taylor)의 생명중심주의(Biocentrism)가 떠올랐습니다. 생명중심주의란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와 상관없이,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철학적 입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잡초도, 벌레도, 작물도 각자의 이유로 살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테일러는 그의 저서 『자연 존중(Respect for Nature)』에서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인간중심주의란 인간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고방식으로,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테일러는 바로 그 전제를 흔들었습니다(출처: Paul W. Taylor, Respect for Nature, Princeton University Press).
물론 농사를 지으려면 잡초는 뽑아야 합니다. 이 철학이 모든 풀을 그대로 두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저는 그동안 잡초를 단순히 제거해야 할 방해물로만 봤습니다. 이제는 잡초를 뽑으면서도 그것이 살려고 했다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2040》도 비슷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속 재생 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 장면들은 토양을 경쟁 상대가 아닌 협력자로 보는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방글라데시의 마이크로 그리드 에너지 공동체나 해양 퍼머컬처 장면들은 모두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라는 말 앞에서 무력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너무 큰 문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텃밭에 서서 잡초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도 변화입니다. 그 시선의 변화가 쌓이는 것이 어쩌면 2040년을 다르게 만드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인가, 구성원인가 — 대지윤리가 던지는 질문
텃밭에서 계속 일하다 보면 이상하게 겸손해집니다.
제가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싹이 트는 건 아닙니다. 비가 언제 올지도 모릅니다. 폭염이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물을 줘도 작물이 자라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울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은 텃밭 앞에서 금방 무너집니다.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사상가인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이것을 철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말한 대지윤리(Land Ethic)란,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토양과 물, 식물과 동물을 포함한 생태공동체 전체를 윤리적 고려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오폴드는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행동이 생태공동체의 통합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전하는 경향이 있다면 옳다. 그 반대라면 그르다"(출처: Aldo Leopold, A Sand County Almanac, Oxford University Press).
이 말이 처음엔 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텃밭 경험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예전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이 농약을 쓰면 작물이 잘 자랄까?
- 이 잡초를 제거하면 수확이 늘어날까?
-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물을 더 줄 수 있을까?
레오폴드라면 여기에 질문 하나를 더했을 것입니다.
- 이 선택은 이 땅의 토양과 곤충과 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질문이 하나 추가된 것 같지만, 이 질문이 들어오는 순간 선택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단순히 내 농사의 효율을 넘어, 내가 살아가는 땅 전체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040》은 바로 이 지점에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데이먼 가모 감독은 네 살배기 딸 벨벳에게 편지를 쓰듯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2040년, 딸이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지구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냐는 질문으로 전 세계를 여행한 것입니다. 그 여행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방법들을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선택하느냐였습니다.
저도 텃밭에서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의 탄소 배출량을 제가 혼자 줄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농약을 쓰지 않는 것, 토양을 단순한 재료가 아닌 살아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 작물이 자라는 데 자연의 리듬을 맞추는 것. 이것들이 레오폴드의 대지윤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중장년이든 청년이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남겨야 하는 세대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지금의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데이먼 가모가 딸에게 편지를 쓴 이유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2040년의 그 아이가 살아갈 세계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그 생각이 텃밭에서 잡초를 뽑는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텃밭의 씨앗은 결국 싹을 틔웠습니다. 폭염과 폭우를 견디고도 자라났습니다. 저는 그것이 단순한 식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2040》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 이미지였을 것입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씨앗 하나. 여러분의 텃밭에는 어떤 씨앗이 있으신가요.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자연을 나에게 필요한 자원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 현실적인 삶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지구를 생각할 때, 오늘 내가 바꿀 수 있는 작은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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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2040_(film)
https://press.princeton.edu/books/paperback/9780691150246/respect-for-nature
https://global.oup.com/academic/product/a-sand-county-almanac-9780195053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