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협력의 실천일까?영화 《모가디슈》로 보는 칸트의 영구평화론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모가디슈》는 전쟁 속에서도 협력과 인간 존엄의 가치를 보여 주는 영화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평화를 지속적인 협력과 신뢰의 질서로 이해한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보여 준 역사적 사건이다.
평화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협력과 존중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총성이 멈추지 않는 모가디슈에서 남한과 북한 외교관들이 같은 차량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념이 아니라 생존이 그들을 하나로 묶은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액션 영화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협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칸트가 18세기에 꿈꿨던 영구평화론이 2021년 한국 영화 한 편 속에 이렇게 선명하게 살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 영화 속에서 다시 읽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795년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에서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멈춘 상태로 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영구평화론이란, 국가 간의 일시적 휴전이나 세력 균형이 아니라 공화적 헌정 질서와 국제 연맹, 그리고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평화 질서를 의미합니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전쟁을 스스로 멈출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조건으로 '대화와 법을 통한 갈등 해결'을 제시했습니다.
《모가디슈》는 이 철학적 명제를 실제 역사적 사건에 겹쳐 놓습니다. 남한 대사 한신성과 북한 대사 림용수는 처음에는 서로를 철저히 경계합니다. 유엔 가입 표결을 앞두고 제3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물밑 경쟁을 벌이던 사이였으니까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 두 집단이 과연 협력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전이 터지고 대사관이 포위되는 순간, 그 경계가 무너집니다.
칸트가 말한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 쉽게 말해 국적이나 이념을 넘어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총성 속에서 오히려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 됩니다. 이념은 생존 앞에서 순서를 바꿉니다. 칸트의 철학이 추상적인 이상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영화는 그것이 극한 상황에서야 비로소 작동하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영구평화론의 핵심: 일시적 휴전이 아닌 제도적 협력과 신뢰 구축
- 코스모폴리타니즘: 이념·국적을 초월한 인간 존엄의 상호 인정
- 공화적 헌정 질서: 권력이 아닌 법과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
- 《모가디슈》는 이 세 가지를 극한 상황 속 실제 인간 행동으로 구현
7·4 남북공동성명과 잊혀져 가는 대화의 기억
1972년 7월 4일, 남북은 처음으로 공식 합의문을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선언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은, 냉전 한복판에서 분단된 두 체제가 대화 가능성을 공식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물론 이후 남북 관계는 긴장과 대화를 반복했고, 성명 자체가 실질적인 평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선례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학창 시절 이 성명을 단순히 시험 범위 안의 암기 항목으로만 대했습니다. 윤리 시간이나 역사 시간에 남북 관계의 주요 사건들을 줄줄 외웠지만, 그것이 왜 지금도 중요한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보면, 그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 남북 문제가 공론장에서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 경제 양극화.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이 너무 많아서 한반도 문제는 점점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통일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대의 통일 필요성 공감 비율은 2010년대 초반 대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출처: 통일연구원).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제 경험상 충분히 납득이 되면서도, 동시에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찜찜함이 남았습니다.
요즘 주말 드라마 《김부장》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 첩보 요원의 훈련 장면이 꽤 강렬하게 그려지는데, 이게 흥미로운 서사를 위한 극적 과장인지, 아니면 실제 역사적 맥락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드라마가 허구의 장르라는 건 알지만, 시청자들이 그 안에서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굳혀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됩니다. 갈등을 자극하는 서사보다는, 서로의 실체를 균형 있게 보여 주는 콘텐츠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존은 이상이 아니라 선택이다
《모가디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탈출 차량에 함께 탑승하는 장면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직전, 북한 외교관이 처음으로 남한 대사관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용기이자, 동시에 상대를 완전한 적으로 규정하기를 포기하는 행위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택은 거창한 평화 의지보다 극도의 절박함에서 나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절박함이 평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칸트가 말한 상호성의 원칙(Principle of Reciprocity)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기서 상호성의 원칙이란,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상대의 태도를 결정하며, 그 상호 인정이 지속될 때 비로소 안정적인 공존이 가능해진다는 개념입니다. 영화 속 남북 외교관들은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점차 신뢰를 쌓아가고, 탈출 이후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조용히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신뢰가 얼마나 묵직한 것이었는지가 느껴집니다.
이 구도는 우리의 일상과도 닿아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온라인 댓글창에서. 우리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할 상대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 점을 솔직히 반성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억지로라도 대화를 시도했을 때,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왔습니다. 그 이해가 동의는 아니어도,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평화를 위한 실천이 꼭 정치적 선언이나 거대한 외교 협상일 필요는 없습니다. 칸트가 강조했던 것도, 결국은 상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일상의 태도였습니다. 공존(Coexistence)이란 단어는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늘 내가 다른 의견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서 시작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모가디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실제로 남한과 북한 외교관들이 함께 탈출했던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다만 영화적 재구성과 극적 허구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므로, 구체적인 대화나 인물 묘사는 창작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Q.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현실 국제 정치에서도 의미가 있나요?
A.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오늘날 유엔(UN) 체제와 국제법의 사상적 토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물론 현실 국제 정치는 그의 이상과 거리가 멀 때가 많지만, '대화와 제도를 통한 갈등 해결'이라는 원칙은 여전히 국제 분쟁 중재의 기본 방향으로 살아 있습니다.
Q.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나요?
A. 성명 직후의 실질적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남북 모두 성명을 자국 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었고, 이후에도 긴장과 대화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식 대화 채널'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는 이후 남북 대화의 모든 선례가 됩니다.
Q. 요즘 젊은 세대가 통일에 관심이 줄어드는 이유가 뭔가요?
A. 통일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20·30대는 통일의 필요성보다 비용과 사회 혼란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내부 경제 불안과 취업난이 겹치면서 한반도 문제가 '나의 현실적 문제'로 연결되지 않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관심의 감소가 무관심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우선순위 재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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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질문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일까요, 아니면 갈등을 해결해 가는 과정일까요?
우리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대화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경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을까요?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협력'은 무엇일까요?
결론
《모가디슈》를 보고 나서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평화가 멀리 있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작동하기 힘든 순간에 오히려 가장 절실하게 선택된다는 것을요. 칸트의 영구평화론이나 7·4 남북공동성명 같은 역사적 언어들은 교과서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일상 속 선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단순히 '남북 화합을 다룬 영화'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지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정치적 해법을 논하기 전에, 우리 각자가 갈등 앞에서 대화를 선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릅니다. 《모가디슈》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 좋은 시점입니다.
참고: 나무위키 — 모가디슈(영화) / 국가기록원 / 통일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