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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이(理)와 영화 남한산성( 도산서원,사단칠정, 거경궁리)

cinema-1 2026. 3. 17. 08:33

일반적으로 성리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학문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자녀들의 역사 공부를 도우며 안동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솔직히 퇴계 이황의 철학이 제 삶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도산서원에 늦게나마 방문하고, 영화 <남한산성>을 다시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각자도생의 논리로 돌아가는 지금, 퇴계가 평생 지키고자 했던 '이(理)'의 가치가 오히려 더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도산서원에서 마주한 원칙의 무게

하회마을이나 병산서원은 교통이 편해서 자녀들과 자주 찾았는데, 정작 도산서원은 아이들이 다 커버린 뒤에야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관광지 특유의 번잡함이 없는 그곳은 무언가 숙연하면서도 단아한 분위기였습니다. 퇴계가 애지중지 가꿨다는 매화나무 앞에 서니, 그가 평생 원칙을 지키며 꼿꼿하게 살아간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퇴계 이황이 강조한 '이(理)'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원리이자 우주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理)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윤리적 기준이자, 물질적 이익이나 현실적 타협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의 중심축을 뜻합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반면 '기(氣)'는 물리적 형체나 현실적 수단을 가리킵니다. 퇴계는 '이귀기천(理貴氣賤)', 즉 정신적 원리가 물질적 수단보다 귀하다고 보았습니다.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이 험하고 불편했던 것처럼, 진리를 찾아 원칙을 지키는 일 역시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오늘 월요일을 시작하면서 '월요일이니까 조금 느슨하게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와 타협했습니다. 주변 상황이나 타인의 시선(氣) 때문에 제가 소중히 여기던 내면의 원칙(理)을 조금씩 내려놓았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퇴계가 말한 '거경(居敬)'은 바로 이런 순간에 항상 깨어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거경이란 마음을 한곳에 모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수양 방법으로, 매 순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도덕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자세입니다.

남한산성 속 이기론의 치열한 격돌

영화 <남한산성>을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역사적 비극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퇴계의 철학을 알고 다시 보니, 이 영화가 사실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단칠정론은 인간의 마음을 선한 본성에서 나오는 네 가지 단서(사단)와 일곱 가지 감정(칠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사단은 순수한 도덕 감정을, 칠정은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철학사연구회).

 

퇴계 이황의 이(理)로 읽는 영화 남한산성

 

 

김상헌의 척화론은 퇴계가 말한 '이'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입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그의 절규는 단순한 명분론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택의 순간은 우리 일상에도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침묵할 때, 누군가 보지 않는다고 사소한 양심을 저버릴 때, 우리는 자주 현실(氣)이라는 핑계로 원칙(理)을 뒷전으로 밉니다.

반면 최명길의 주화론은 생존이라는 현실적 가치를 우선시합니다. 그의 논리도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묻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과연 원칙을 포기하고 얻어낸 생존이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음'인가? 퇴계라면 아마도 김상헌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육체는 소멸할지언정 대의와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것, 즉 '이'를 보존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번잡한 일상 속 거경궁리의 실천

자칫 퇴계의 사상이 너무 추상적이고 지키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황이 강조한 항상 깨어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환경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시국이 어지러운 사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항상 깨어있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퇴계가 말한 '궁리(窮理)'는 사물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궁리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거경궁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실천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고요하게 응시하는 시간을 단 5분이라도 가져보는 것입니다. 영화 속 김상헌처럼 결과가 나에게 이롭지 않더라도 "이것이 옳다"는 확신 하나만으로 끝까지 지켜내는 자신만의 가치를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습니다.

  • 오늘 내가 한 선택 중에서 양심에 어긋난 것은 없었는가?
  • 현실적 이익(氣) 때문에 포기한 원칙(理)은 무엇이었는가?
  • 내일은 어떤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居敬)을 유지해야 하는가?

학문이 머리에 머물지 않고 삶의 태도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었던 퇴계의 사상은 결코 낡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스스로와의 타협 속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내일은 조금 더 깨어있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사단칠정론의 성리학 논쟁은 오늘날에도 영화 속 소재로 다루어질 만큼 끊이지 않는 담론입니다. 그것은 이 질문이 바로 우리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세상이 어지럽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시대에, 퇴계 이황이 평생 지키고자 했던 '이'의 순수성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의 '이(理)'는 안녕했는가?"라고요.


참고: https://think6247-1.tistory.com/entry/%EC%98%81%ED%99%94-%EB%82%A8%ED%95%9C%EC%82%B0%EC%84%B1-%EC%98%81%ED%99%94-%EC%A4%84%EA%B1%B0%EB%A6%AC-%EC%97%AD%EC%82%AC%EC%A0%81-%EB%B0%B0%EA%B2%BD-%EC%B4%9D%ED%8F%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