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라는 짐, 그 무거운 자유의 무게: 《어른이 되면》으로 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솔직히 저는 아들이 정규직 근로 계약서에 싸인을 하던 날, 제 짐도 함께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3개월 수습을 버텨내고 이제 스스로 서는구나 싶었는데, 바로 그 직후에 들려온 말이 "출근하기 싫다"였습니다. 한국 독립영화 《어른이 되면》이 그리는 미취업 청년의 불안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저는 그때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실존주의가 말하는 취업 불안의 정체
일반적으로 취업에 성공하면 불안이 사라진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월세 집도 얻고 제가 쓰던 차도 넘겨받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직장 다니기 싫다"는 말이 나왔을 때, 저는 불안이 취업 전후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 감정을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xiety)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실존적 불안이란, 인간이 자신에게 무한한 선택지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엄습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취업 전에는 "어디에 지원할까"가 불안의 원인이었다면, 취업 후에는 "이 선택이 정말 나다운가"가 새로운 불안으로 찾아옵니다. 출구가 없는 게 아니라, 출구가 너무 많아서 두려운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핵심 명제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는 이 맥락에서 특히 날카롭게 와닿습니다. 쉽게 말해, 인간은 태어날 때 아무런 목적표가 없이 먼저 세상에 던져지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사물은 용도가 먼저 정해지고 만들어지지만, 사람은 반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취업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본질을 미리 부여하려 합니다.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미완성 인간 취급을 받습니다.
《어른이 되면》의 청년들이 공허하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취업이라는 사회적 본질을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덜 된 어른'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은 아직 자신만의 본질을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일 뿐입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에 따르면, 사르트르에게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임을 증명하는 신호입니다.
- 취업 전 불안: 선택지 과잉에서 오는 방향 상실감
- 취업 후 불안: 선택한 삶이 진짜 '나다운가'에 대한 의문
- 사르트르의 관점: 불안은 주체적 존재임을 확인하는 감정
진정성과 가족의 무게, 내가 몰랐던 것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녀를 충분히 뒷받침해주면 자녀가 잘 버텨낼 거라고 기대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월세, 차, 정서적 지지까지 제공했으니 제 역할을 다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불평이 이어지면서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냥 넘길까, 진지하게 물어볼까, 아니면 당연한 고비라고 강조할까. 솔직히 지금도 정답을 모릅니다.
사르트르는 이 상황을 진정성(authenticity)의 문제로 바라볼 것 같습니다. 진정성이란 타인이 정해놓은 역할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즉, 아들이 "출근 싫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성실의 신호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진짜 자기 것인지 묻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단순한 불평으로만 받아들인 건 제 실수였습니다.
동시에 저도 하나의 실존입니다. 지방으로 내려온 이유, 귀농귀촌의 꿈, 이제 더는 뒷받침할 에너지가 없다는 현실, 이 모든 게 제 삶의 맥락입니다. 사르트르는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책임이란 내 선택의 결과를 내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 아들도 제 소진된 에너지를 대신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 경계를 지금 서로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자 중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은 1년 6개월 남짓입니다. 아들의 흔들림이 통계적으로도 드물지 않은 현상이라는 걸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취업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실존의 출발점이라는 말이 그냥 철학적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아들의 자유를 존중하되 제 실존도 동시에 지켜내는 것입니다. 서로의 한계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 그게 사르트르가 말하는 진정성 있는 관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취업했는데도 아이가 계속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취업이 되면 안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제 경험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적 불안 개념처럼, 취업 후에는 "이 선택이 나다운가"라는 더 깊은 질문이 시작됩니다. 단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자녀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 주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Q. 부모가 지쳐있을 때 자녀 지원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나요?
A. 부모도 하나의 실존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에게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말없이 지쳐가는 것보다 관계에 훨씬 건강합니다. 진정성 있는 소통이 일방적인 희생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지지가 됩니다.
Q. 청년들이 첫 직장을 금방 그만두는 게 요즘 흔한 일인가요?
A. 네, 통계적으로도 확인됩니다.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1년 반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초반의 흔들림은 특정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인 현상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과도하게 자책하거나 자녀를 다그칠 필요도 없습니다.
Q. 《어른이 되면》은 어떤 영화인가요?
A. 한국 독립영화로, 취업을 준비하거나 갓 사회에 발을 내딛은 청년들의 현실과 내면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화려한 드라마가 아니라 일상의 무게를 담백하게 따라가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실존주의적 질문, 즉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결론
아들이 정규직이 됐다는 소식에 저는 제 꿈의 시작을 봤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출근하기 싫다"는 말에 그 꿈이 흔들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취업을 종착역으로 생각했고, 아들은 새로운 출발점 앞에서 또 다른 실존적 불안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자유는 축복이자 무게입니다. 그 무게를 자녀 혼자 짊어지게 두는 것도, 부모가 대신 다 받아드는 것도 정답이 아닙니다. 서로가 각자의 실존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그 위에서 관계를 다시 세우는 것이 지금 저에게 필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근로 계약서 한 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제가 배웠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6%B4%EB%A5%B8%EC%9D%B4%20%EB%90%98%EB%A9%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