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장을 왜 싫어할까 《노인과 바다》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부모의 걱정과 내려놓음
아들이 인센티브 선정 문자를 받고 나서 바로 "이거 받고 그만두고 싶다"고 톡을 보내왔을 때, 저는 한참 동안 답장을 못 했습니다. 정규직에 월세 지원까지 받는 직장인데 왜 싫다는 건지, 솔직히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제가 보는 것과 아들이 보는 것이 애초에 달랐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통제 가능성 — 부모가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생기니 오히려 자녀 걱정이 는다는 말이 있는데, 저도 정확히 그 상황입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제 일에 치여서 아들 걱정을 깊이 할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걱정도 함께 늘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아들 직장의 조건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정규직 고용 형태
- 회사 제공 월세 지원
- 일정 근속 후 지자체 인센티브 수령 가능
객관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조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조건들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볼 수 있는 조건이지, 아들이 매일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Stoicism)의 핵심 개념인 통제 가능성(dichotomy of control)이 중요해집니다. 통제 가능성이란 삶의 요소를 '내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영역'과 '외부에서 결정되는 영역'으로 나누는 사고 방식입니다. 에픽테토스가 가장 강조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볼 수 있는 것은 직업 조건이라는 외형입니다. 하지만 업무 환경, 조직 문화, 인간관계의 질,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그 직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만이 실질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직장 아니냐"고 말해봤자, 아들이 느끼는 직장 내 심리적 소진(burnout)까지 제가 대신 평가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심리적 소진이란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적, 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직장인 중 46%가 이직 의사의 이유로 '직무 적합성 부족'을 꼽았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안정성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이직의 주된 동기라는 얘기입니다. 부모 세대가 직장을 생활 기반으로 봤다면, 지금 세대는 직업 적합도(job fit)라는 기준도 함께 적용합니다. 직업 적합도란 개인의 성격, 가치관, 역량이 직무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제가 직장을 다닐 때도 맞지 않는 업무를 억지로 버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조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버티는 것이 언제나 옳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 적합도와 내려놓음 — 부모가 할 수 있는 것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는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면서도 바다를 통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파도가 어떻게 치는지, 상어가 언제 나타나는지는 그가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부모의 상황과 꽤 정확하게 겹친다고 느꼈습니다. 아들의 직업 선택은 아들의 바다입니다. 제가 아무리 조건이 좋다고 설명해도, 그 직장에서 앞으로 10년을 버텨야 하는 사람은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며칠째 붙들고 있었는데, 결국 세 가지로 정리가 됐습니다.
- 조건 대신 감정을 먼저 묻기: "어떤 점이 가장 힘드니?"라는 질문이 "왜 그만두려고 하니?"보다 대화를 열어줍니다.
- 경험을 공유하되 결론을 강요하지 않기: 제가 직장 생활에서 겪은 이야기는 해줄 수 있지만, 그 경험이 아들의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 자신의 삶을 챙기기: 자녀 걱정에 하루를 다 쓰는 대신, 퇴직 이후 제가 하고 싶었던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결국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낫습니다.
한국심리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인 자녀와 부모 사이의 갈등 원인 중 '진로 및 직업 결정에 대한 간섭'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걱정과 통제는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자녀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자기결정이론이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 내적 동기와 심리적 안녕감이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선택에 지나치게 개입할수록, 자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성을 잃고 오히려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들에게 "계속 다녀라"를 반복할수록, 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제가 빼앗는 셈이 되는 겁니다.
솔직히 이 생각에 도달하기까지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모라는 역할에 오래 익숙해져 있으면, 내려놓는 것이 무관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상 느낀 건,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때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답장은 아직도 못 보냈습니다. 뭘 써야 할지보다, 뭘 쓰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만두지 마라"는 말 대신, "어떤 생각인지 좀 더 얘기해봐"라고 쓰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적절한 대답일 것 같습니다. 자녀의 선택을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진로 조언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에픽테토스의 철학을 적용해본다면
- 자녀의 선택을 바꾸려 하기 전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생각해봅니다.
- 조언하기 전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먼저 물어봅니다.
-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을 내 삶을 돌보는 시간으로 조금씩 바꿔봅니다.
- 자녀가 선택한 결과를 대신 책임지기보다 스스로 책임질 기회를 남겨둡니다.
- “좋은 직장인가?”와 함께 “그 사람에게 맞는 삶인가?”라는 질문도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볼 질문 3가지
- 나는 자녀의 행복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안심할 수 있는 선택을 자녀에게 바라고 있는 것일까?
- 자녀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도록 믿어주는 것과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 사이의 적절한 거리는 어디일까?
- 자녀의 인생을 걱정하는 대신, 지금 내가 다시 살아보고 싶은 나의 삶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