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내려놓으니 비로소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키루》 살다× 빅터 프랭클
통계조사 지원업무 계약 만료 후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갈 곳이 없었던 날이 종종 있었습니다. 알람을 끄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하루를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것도,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1952)를 다시 꺼내 든 건 바로 그 즈음이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여운을 천천히 들여다보려는 사색의 기록입니다.
삶의 무게를 처음 느낀 순간, 와타나베처럼
와타나베는 30년 넘게 관공서 책상에 앉아 서류를 처리해온 공무원입니다. 그는 성실했지만, 어느 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실감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위암 선고를 받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타나베가 두려워한 것은 죽음 자체였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이었을까.
영화는 그에게 실존주의(Existentialism)적 질문을 던집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을 때, 그가 뜻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스스로 의미를 선택합니다(출처: 장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와타나베는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기 시작합니다. 30년 동안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저도 비슷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3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뒤, 공공일자리에도 지원하고, 기간제 업무도 해보고,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미세먼지 감시원으로 일했고, 경제총조사 업무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지원한 미세먼지 감시원 자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제 머릿속에 울려 퍼진 말은 단 하나였습니다. "나는 이제 정말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그 순간이 와타나베와 겹쳤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알게 된 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처음으로 직면하게 된 순간이요.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서 온다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로고테라피란,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동기라는 심리치료 이론입니다.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의미를 붙잡은 사람이 더 오래 견뎠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출처: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이것입니다. 의미는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응답하느냐에 있다고요.
와타나베는 화려한 성공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작은 공원 하나를 만드는 데 마지막 힘을 씁니다. 거창한 기념비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실제 하루를 조금 더 좋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고작 공원 하나냐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바로 그 소박함이 핵심이었습니다. 의미는 크기와 무관했습니다.
불합격 이후 저는 한동안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둔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실업급여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를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직업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아마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쓸모 있다"는 감각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프랭클의 말이 그제야 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의미는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태도 안에 있었습니다.

직업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시 읽는 법
재취업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시 기회가 생기면 당연히 도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재취업이 삶의 유일한 증명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퇴직 이후 가장 낯선 순간은 누군가 "요즘 뭐 하세요?"라고 물어볼 때였습니다. 예전엔 직장 이름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그 질문이 훨씬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복잡함이야말로 더 솔직한 대답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의 하루를 구성하는 것들을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 텃밭에서 흙을 만지는 시간
- 오래된 영화를 다시 꺼내 보는 저녁
-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오후
- 가족의 작은 일을 돕는 아침
- 자원봉사를 준비하며 누군가를 떠올리는 순간
이 중 어느 하나도 직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 제가 살아 있는 시간입니다.
에이전시(Agenc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에이전시란,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체성을 뜻합니다. 와타나베가 공원을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죽음 앞에서도 에이전시를 회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과가 얼마나 거창한지와는 별개로.
저도 이제는 질문을 바꿔보려 합니다. "어떤 일자리를 얻을 것인가"에서 "지금 내가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로요.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결과를 기다리고, 두 번째 질문은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이키루》의 마지막 장면에서 와타나베는 눈 내리는 공원 그네 위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가 무언가를 이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가 마침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습니까? 직장이 있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살고 있냐고요.
저는 아직 그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만 미세먼지 감시원 불합격 통보를 받고 무너졌던 그 날 오후가,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으로 삶 전체를 다시 읽기 시작한 시간이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니 오늘 갈 곳이 없는 아침이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정말 일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불안해하는 것일까?
- 직업이 없어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 재취업이라는 목표에서 잠시 내려온다면,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먼저 돌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D%82%A4%EB%A3%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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