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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일까?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보는 맹자의 성선설

cinema-1 2026. 6. 30. 22:16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그것만이 내 세상》은 가족의 화해와 성장을 통해 인간의 선한 본성을 보여 주는 영화이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은 누구나 선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설명한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며, 인간다움의 출발점이다.
가족은 서로를 변화시키고 함께 성장하게 만드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이다.

 

가족인데 남처럼 지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시나요. 저는 그 감각을 꽤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 안고 살았습니다. 큰아이가 유학을 떠난 뒤 작은아이와의 시간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고, 그 어긋남이 몇 년째 쌓이다 보니 같은 집 안에 있어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본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가족관계가 멀어졌다고 느낄 때, 무엇이 문제일까

영화 속 조하는 처음에 동생 진태를 반기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고,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솔직히 말하면 동생이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게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큰아이가 유학을 떠난 뒤 작은아이는 점점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하고, 또래 외의 관계는 모두 끊다시피 했습니다. 부모인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철수(social withdrawal)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철수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행동 패턴을 말합니다. 청소년기에 형제나 또래와의 핵심 애착 관계가 흔들리면 이런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가족 내 주요 관계 단절을 경험한 청소년의 경우 사회적 철수 및 등교 거부 등의 행동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작은아이는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졸업했고, 대학도 중퇴했습니다. 취업 지원 서비스도 중단됐습니다. 저는 그 시간 동안 아이를 설득하거나 다그치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없는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영화에서도 조하가 진태에게 강요하거나 바꾸려 들 때 관계는 오히려 굳어집니다. 변화는 다른 방향에서 왔습니다.

가족관계에서 멀어짐의 원인을 짚어 보면 대체로 이런 흐름이 반복됩니다.

  • 핵심 관계(형제, 부모)의 물리적·정서적 단절이 시작된다
  • 외부 관계(학교, 또래)에서도 점진적으로 철수한다
  •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게 된다
  • 고립이 고립을 낳는 순환이 반복된다

여기서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 감각이 무너지면 작은 도전조차 버겁게 느껴집니다. 작은아이가 자격증 공부도, 취업 지원도 번번이 중단했던 건 게으름이 아니라 이 감각의 붕괴였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측은지심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습니다. 성선설이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본성이 억압되거나 가꾸어지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사상입니다. 맹자가 제시한 사단(四端) 중에서도 특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은 타인의 고통을 보았을 때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는 감각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개념이 단순한 고전 철학 이론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조하가 진태를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도 작은아이의 상황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저러는지, 왜 이렇게까지 버티는지.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의 고립이 선택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무언가가 달라졌습니다. 그게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 작동하는 순간이었다고 지금은 해석합니다.

맹자는 또한 인(仁)을 강조했습니다. 인이란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덕목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조하는 결국 진태를 위해 몸으로 움직입니다. 말이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책임을 지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조하 자신도 변화시킵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과 맹자의 성선설 이미지

 

 

 

인간의 도덕 발달을 연구한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의 도덕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규칙과 이익의 단계를 넘어 타인에 대한 공감과 보편적 원칙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맹자의 성선설과 인(仁)의 개념은 이 발달 경로와 맞닿아 있습니다. 선한 가능성은 이미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빗장이 열리는 순간

큰아이의 결혼식 전날까지도 작은아이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이 길고 무거웠습니다. 미취업 상태의 자신이 형의 결혼식 자리에서 어떤 시선을 받을지 두려웠던 걸까요,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멀어진 형과의 자리가 낯설었던 걸까요. 아마 둘 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아이 결혼식 얼마 전, 작은아이가 수습사원으로 작은 직장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참석했습니다. 형수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잠깐 웃는 얼굴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게 극적인 화해여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굳어 있던 무언가가 아주 조금 녹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그 가장 원초적인 단위입니다.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의 빈 자리를 채워 가는 곳입니다. 수양(修養)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의미가 있습니다. 수양이란 자신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실천적 과정을 말합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작은 행동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가족 관계에서 빗장이 열리는 계기를 돌아보면, 대부분 거창한 사건이 아닙니다. 식사 한 끼, 작은 취업 성공, 형수와 나눈 몇 마디. 그 작은 것들이 쌓여서 조금씩 문이 열립니다. 조하와 진태도 어느 특별한 날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낸 평범한 시간들이 두 사람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가장 어렵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 어려움이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관계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맹자가 말한 선한 씨앗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먼저 건넨 밥 한술, 먼저 잡은 전화 한 통에서 싹을 틔웁니다. 아직 관계가 굳어 있다면,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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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볼 질문


가족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존재일까요?
맹자가 말한 '선한 본성'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건넬 수 있는 작은 배려는 무엇일까요?


참고: https://namu.wiki/w/%EA%B7%B8%EA%B2%83%EB%A7%8C%EC%9D%B4%20%EB%82%B4%20%EC%84%B8%EC%83%81(%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