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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에게로 돌아갈 시간 《오디세이》와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인생 후반의 귀환

cinema-1 2026. 8. 12. 14:29

실업신고를 마치고 나서 지인과 꿈에 그리던 예쁜 카페에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커피가 입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손에 머그잔을 들고 있었는데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멍했습니다. 실직이 단순히 월급이 끊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 카페에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이 글은 그 이후 제가 겪은 일들과, 영화 한 편이 불안했던 저에게 던져준 질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몸이 먼저 멈추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실업신고 다음 날,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혼자 관람했습니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왔고, 눈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발도 저렸습니다.

사실 그 증상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눈의 떨림은 이미 2주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냥 피로 때문이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경과를 찾아갔고, 의사가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할 때 솔직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대신 의사에게서 자율신경계(ANS, Autonomic Nervous System)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율신경계란 심장 박동, 혈압, 소화처럼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하지 않는 신체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계로,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이 계통이 과활성화되어 어지럼증이나 손발 저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증상들이 과로와 실직 이후 쌓인 만성 스트레스(Chronic Stress)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성 스트레스란 단발성 충격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심리적 압박을 의미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몸을 몰아붙인 걸까.

실제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실직 경험자의 상당수가 신체 증상을 동반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그 강도는 실직 직후보다 오히려 실직 후 3~6개월 사이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저는 그 통계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먼저 배웠습니다.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안이었다는 것

퇴직 이후에도 저는 쉬지 않았습니다. 아동안전킴이와 기간제교사, 농촌에서 살아보기,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 입교,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과 인턴 생활, 미세먼지 감시원으로 일했고, 그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단기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녀가 아직 취업 전이었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신경과 진료를 받고 나서 처음으로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정말 책임감 때문에 움직인 걸까, 아니면 멈추면 무너질 것 같은 불안 때문에 계속 달린 걸까.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책임감은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를 품고 있습니다. 반면 불안이 동력이 될 때는 선택이 아니라 회피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회피 동기(Avoidance Motivation)라고 부릅니다. 회피 동기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패턴을 의미합니다.

제 경험상,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불충분하다는 감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계속 배를 타고 나가는데 항구로 돌아오는 감각이 없는 것, 그게 제가 오랫동안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자녀가 어렵게 정규직이 되었을 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가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안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한쪽에서는 어떻게든 버텨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올라왔고, 다른 쪽에서는 그 마음이 자녀를 위한 것인지 제 불안을 잠재우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불안이 동력이 될 때 나타나는 징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멈추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 충분히 했는데도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반복된다
  • 다음 일자리를 찾는 것이 회복이 아니라 도주처럼 느껴진다
  •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도 무시하고 계속 진행한다

저는 이 네 가지에 전부 해당했습니다.

 

 

영화 <오딧세이>와 에픽테토스의 철학사상 이미지

 

 

귀환은 직장이 아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가 향하는 곳은 이타카라는 섬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그가 정말 돌아가려 했던 것은 장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을 위기를 반복해서 마주합니다.

고대 그리스 서사에서 이 귀환의 개념을 노스토스(nostos)라고 합니다. 노스토스란 단순히 집으로 되돌아가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정체성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영어 단어 '향수(nostalgia)'가 여기서 유래했다는 사실도 그 무게를 더해줍니다.

저에게 실직 이후의 시간도 그런 의미의 노스토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직장을 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가를 먼저 묻는 시간 말입니다.

퇴직 후 계속 단기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 저는 한 번도 그 질문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멈추면 그 질문이 너무 크게 들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 이야기도 이 지점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오디세우스의 항해가 있듯이, 자녀에게는 자녀의 항해가 있습니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리면서도 자신만의 성장 여정을 걷듯이, 자녀 역시 자신의 실패와 선택을 경험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장년층 퇴직자 중 재취업까지 평균 11.2개월이 소요되며, 이 기간 심리적 지원 없이 재취업 활동만 반복하는 경우 번아웃(Burnout) 비율이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번아웃이란 장기간의 과부하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는 그 숫자 안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다음 일자리가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자녀의 진로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경과 진료실에서 나온 이후,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온 이후, 처음으로 숨이 조금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멈추는 것도 항해의 일부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닻을 내리지 않으면 배는 어디로 가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지금 이 시간이 그런 닻을 내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움직이게 될 때는, 불안이 아닌 제 속도로 방향을 정해서 나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

《오디세이》를 에픽테토스의 철학으로 다시 바라보면,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은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그는 바다의 폭풍도, 신들의 뜻도,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녀가 어떤 일을 선택하는지, 그 일에 만족하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원한 일자리에 합격할 것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결과까지 제 뜻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자녀를 어디까지 도울 것인지, 그리고 이제 제 삶의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는 제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저는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너무 오래 애써왔는지도 모릅니다. 자녀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불합격하면 다시 제 자신을 탓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인생은 결국 자녀의 몫이고, 제 인생 역시 이제 제가 다시 돌봐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실패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신호였다고 생각해보려 합니다.

오디세우스에게도 중요한 것은 계속 폭풍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그곳은 어쩌면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가 아니라,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제 자신의 삶일지도 모릅니다.

에픽테토스가 말하듯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조금씩 내려놓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오늘에 마음을 돌려놓는 것. 그것이 인생 후반부에 제가 배워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긴 오디세이를 끝내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진짜 귀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심리 조언이 아닙니다. 신체 증상이 지속될 경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정말 자녀를 돕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녀의 삶까지 책임지려 하고 있는 것일까?
  •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까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 자녀를 돕는 것과 자녀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 이제 내 삶으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참고: https://namu.wiki/w/%EC%98%A4%EB%94%94%EC%84%B8%EC%9D%B4(%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