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늘은 아들에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패터슨》과 장자가 말하는 나의 하루

cinema-1 2026. 8. 27. 05:44

솔직히 저는 그날 오후까지도 전화할 생각이었습니다. 습관이 그랬으니까요. 퇴근 시간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아들 생각이 났고, "오늘 저녁은 뭐 먹었니?"가 하루의 마침표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직을 하고 나서 그 습관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하루가 없어진 자리에 아들의 하루가 들어와 있었던 겁니다.

실직 후 생긴 이상한 습관, 분리불안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직장을 잃고 나서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바빠졌습니다. 일이 없으니 당연히 한가할 것 같은데, 오히려 아들에 대한 생각이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퇴근은 했는지, PC방에 간 건 아닌지.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라고 부릅니다. 분리불안이란 애착 대상과 떨어지는 것에 과도한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을 말합니다. 흔히 어린아이의 감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성인 부모에게도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줄어드는 시기, 즉 퇴직이나 실직 이후에 자녀를 향한 과의존적 관심이 강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애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실은 제 불안을 달래는 수단이 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의 저녁을 걱정하면 뭔가 역할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아들이 잘 먹었다는 답장이 오면, 저도 모르게 안도했습니다. 아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저를 위한 전화였던 겁니다.

국내 연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됩니다. 중장년 실직자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퇴직 후 자아정체감(ego identity) 혼란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으며 이 시기에 가족 관계에서 과도한 역할 의존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자아정체감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내면의 지속적인 감각을 의미하는데, 직업이라는 외적 틀이 사라지면 이 감각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흔들림이 아들에게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국선도가 가르쳐준 것, 나의 하루를 사는 법

오늘은 그 시간에 시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센터에 가서 국선도를 처음 배웠습니다. 국선도(國仙道)란 호흡 수련과 신체 동작을 결합한 한국 전통 수련 방식으로, 단전호흡을 중심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단전호흡이란 배꼽 아래 단전 부위에 의식을 집중하고 복식 호흡을 통해 기(氣)의 흐름을 조절하는 수련법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어색했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은 이미 동작이 익숙해 보였고, 저만 어딘가 어색하게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들 생각이 잠깐 멈췄습니다. 딱 그 한 시간 동안만큼은, 제 호흡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마음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하고, 판단 없이 현재를 경험하는 심리적 태도를 말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마음챙김 기반의 수련 활동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반추적 사고를 줄이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명상의학회). 국선도 수련이 정확히 그런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달랐습니다. 뿌듯하다기보다는, 조용히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이 불안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느낌.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이 작품은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녁에는 시를 쓰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됩니다. 패터슨에게는 자신의 하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내는 하루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처음으로 그 감각을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영화 <패터슨>과 장자의 사상 이미지

 

부모의 새로운 독립,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랑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돌봄의 관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관성이란 외부 힘이 없으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말하는데, 부모의 돌봄 패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그 패턴은 자녀가 서른이 넘어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오늘 전화하지 않은 것은 아들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저녁을 스스로 해결할 공간을 남겨주는 것, 그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인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는 부모의 간섭이 없는 시간입니다.

장자(莊子) 철학에서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관점에서 보면, 애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무위자연이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아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아들 스스로 자신의 흐름을 찾게 두는 것, 그것도 무위의 실천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매일 하던 안부 전화를 이틀에 한 번으로 줄여보기
  • 그 빈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활동 한 가지 시작하기
  • 하루가 끝날 때 "오늘 나는 누구의 삶을 살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 저처럼 문화센터에서 한 시간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중심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퇴직 이후의 삶은 상실이 아니라 재배치의 시간입니다. 자녀에게 집중되어 있던 관심의 일부를,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시기에 부모가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독립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들은 잘 지냈을 겁니다. 저도 잘 지냈습니다. 처음으로 서로의 하루가 따로 존재했습니다. 그 사실이 조금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괜찮았습니다. 내일도 전화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이 감각은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아들의 삶을 걱정하는 시간과, 제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질문

  • 자녀의 하루를 걱정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부모의 사랑에는 ‘곁에 있어주는 것’뿐 아니라 ‘한 걸음 물러나는 것’도 포함될까?
  • 자녀가 독립할수록 내 삶에서 새롭게 발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참고: https://namu.wiki/w/%ED%8C%A8%ED%84%B0%EC%8A%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