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과 프랭클의 의미치료: 목표 달성 후 허무함을 넘어
목표를 이루고 나서 오히려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손에 쥐던 날, 기대했던 해방감 대신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이 감정에는 이름이 있었고, 그것을 알고 나서야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도착의 오류 — 다 이루고 나서야 알게 된 것
심리학에서 '도착의 오류(Arrival Fallac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도착의 오류란, 특정 목표에 도달하면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전문의 탈 벤-샤하르(Tal Ben-Shahar) 박사가 이 개념을 체계화했는데(출처: Harvard Health), 목표를 이룬 직후의 행복감은 생각보다 훨씬 짧게 끝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퇴직 후 지방으로 내려와 아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준비했습니다. 공부하는 내내 '이것만 따면 뭔가 달라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합격증을 받아든 순간, 정작 그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나이 앞에서 번번이 막혔습니다. 결국 8개월짜리 미세먼지 감시원, 2개월짜리 경제총조사 업무를 전전했습니다.
경제총조사 현장에서 산업분류 체계를 마주쳤을 때, 자격증 공부 때 외웠던 내용이 겹쳐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됐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목표 달성이 주는 만족감보다 그 과정에서 쌓인 지식이 엉뚱한 곳에서 쓰이는 순간이 훨씬 오래 남더군요. 그것이 도착의 오류를 살짝 비껴가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도착의 오류: 목표 달성 후 기대한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심리 현상
- 정규직 취업 대신 단기 일자리를 반복하며 느낀 현실의 무게
- 그럼에도 공부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미를 만들어낸 경험
의미치료 — 허탈감 속에서 프랭클이 건넨 말
전입주민 환영사업 미선정 통보를 받던 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농 준비를 위해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흔들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렵게 취업한 아들이 정규직 근로계약서를 손에 쥐고도 "회사 다니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밀물처럼 들어찼습니다.
그때 다시 펼쳐든 것이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y)였습니다. 로고테라피란, 인간이 삶에서 '의미(Logos)'를 찾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동기로 보고,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심리치료 기법입니다.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한 경험을 토대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살아야 할 이유'를 붙들고 있었다는 점임을 발견했습니다(출처: Viktor Frankl Institut).
프랭클은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의 부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읽힙니다. 단기 일자리가 끝날 때마다 의욕이 바닥을 치지만, 그 일을 하면서 마주친 사람들, 잠깐이나마 쌓인 현장 감각, 이런 것들이 지금도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의미는 도착점이 아니라 걷는 중간에 생겨나는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 문장이 요즘 자꾸 머릿속을 맴돕니다. 처음엔 자조처럼 들렸는데, 되새길수록 프랭클이 말한 의미 발견과 맞닿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귀농준비 — 영화 《소울》이 보여준 다른 질문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2020)의 주인공 조는 평생 꿈꿔온 재즈 공연 무대에 드디어 섭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오히려 공허합니다. "이게 다야?"라는 물음이 그를 붙잡습니다.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거창한 곳에서 찾지 않습니다. 피자 한 조각의 맛, 낙엽이 바람에 구르는 모습, 길에서 나눈 짧은 대화. 그런 것들이 삶의 본체라고 말합니다.
제가 귀농 준비를 꿈꾸는 이유도 처음엔 명확했습니다. 도시를 떠나 자급자족하는 삶, 아들과 가까운 곳에서 뭔가를 일구는 그림. 그런데 지원사업 미선정 한 방에 그 그림이 흔들렸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귀농 자체에 의미를 뒀다기보다, 귀농이라는 '도착점'에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울》이 던지는 질문은 "목표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입니다. 귀농준비 과정에서도 마을 사람과 나눈 대화, 처음 텃밭에 씨앗을 심던 감각, 지자체 단기 일자리에서 마주친 낯선 동네 풍경 — 이것들이 실은 귀농의 본론이었을 수 있습니다. 목적지보다 걷는 길 자체에 이미 귀농의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막막한 것은 사실입니다. 퇴직 후 원하는 일도, 귀농도, 아들의 직장도 전부 불안정합니다. 그래도 제 경험상 이런 불안정함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어떤 성취가 아니라, 그때 주변에 있었던 사람과 장면들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목표를 달성했는데 왜 허무한 건가요?
A. 그것이 도착의 오류입니다. 목표에 도달하면 삶이 극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믿지만, 실제로 일상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자격증 취득 후 달라진 건 합격증 한 장뿐이었고 현실은 여전히 다음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허무함은 잘못된 게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찾으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Q. 로고테라피가 실생활에도 도움이 되나요?
A. 로고테라피는 거창한 치료실에서만 쓰이는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 하는 일에서 작은 의미라도 하나 찾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경제총조사 현장에서 산업분류 공부가 겹쳐 보이던 그 순간처럼, 의미는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불쑥 나타납니다. 억지로 의미를 만들 필요 없이, 지금 하는 것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귀농 지원사업에 떨어지면 귀농을 포기해야 할까요?
A. 지원사업 미선정이 귀농 자체의 실패는 아닙니다. 다만 그 실망감이 크다면, 귀농이라는 목적지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걸어둔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볼 시점일 수 있습니다. 귀농준비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배운 것들이 이미 귀농의 일부입니다. 지원사업은 수단이지 귀농의 본질이 아닙니다.
Q. 영화 《소울》이 어른들에게도 의미 있나요?
A.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다가옵니다. 아이들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어른은 '그래서 이루고 나면 뭐가 남나'라는 질문을 이미 경험한 채 봅니다. 저는 퇴직 이후의 감정과 주인공 조의 공허함이 겹쳐 보여, 애니메이션인데도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목표 달성 후 찾아오는 허무함은 실패의 신호가 아닙니다. 도착의 오류가 말해주듯, 우리는 애초에 목표 자체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얻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그 허탈함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귀농준비가 흔들리고, 단기 일자리가 끝나고, 아들의 직장이 불안한 지금 — 저는 여전히 막막합니다. 그래도 《소울》의 조가 결국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듯, 지금 있는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다음 의미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목표를 바꾸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의 작은 것들을 먼저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86%8C%EC%9A%B8(%EC%95%A0%EB%8B%88%EB%A9%94%EC%9D%B4%EC%8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