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소유의 사슬을 끊고 존재의 약속"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민간점검원 일을 시작한 이후, 제 아침 루틴은 휴대폰 앱의 날씨 정보 체크로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그저 눈비 소식만 살폈지만, 이제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 그리고 주 1회 에어코리아(AirKorea)를 통해 우리 동네 대기질 상황을 꼼꼼히 살핍니다.

수려한 경관에 반해 정착한 이 지방 도시에서 제2의 인생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도심 외곽의 시멘트 공장과 광산, 각종 축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와 유해 물질들을 마주하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가동되는 산업 시설들이, 정작 우리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얼마나 처절하게 파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 우리가 '존재'해야 할 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유와 존재, 우리 삶은 어디쯤일까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의 삶을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눴습니다. 소유(Having) 양식과 존재(Being) 양식입니다. 소유 양식이란 물건, 지식, 지위를 '내 것'으로 만들어 행복을 찾는 방식을 말합니다. 반면 존재 양식은 무언가를 가지려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타인·자연과 능동적으로 관계 맺는 삶입니다.
제가 민간점검원 일을 시작한 뒤 거의 매일 휴대폰에서 대기질 정보를 확인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날씨만 봤는데, 이제는 미세먼지(PM10), 초미세먼지(PM2.5) 농도를 체크하고 주 1회씩 에어코리아에서 우리 동네 대기 상황을 봅니다. 여기서 PM2.5란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인 미세먼지로, 폐포까지 침투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입니다(출처: 환경부). 처음 이곳 지방도시에서 귀농귀촌 교육을 받으며 수려한 경관에 반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지만, 막상 도심과 외곽의 시멘트 공장, 광산, 축사를 다니며 보니 생각보다 많은 유해 시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프롬의 관점에서 보면 저 역시 '소유'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무슨 물건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집 안 곳곳에는 언젠가 쓸 거라고 모아둔 물건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종량제 봉투처럼 생필품이 떨어지면 불안해지고, 여유분을 챙겨두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게 바로 프롬이 말한 소유 양식의 함정입니다. 소유물은 유한하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에, 소유에 집착할수록 우리는 더 큰 불안에 시달립니다.
월터의 여행이 보여준 존재로의 도약,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셨나요? 주인공 월터는 잡지사 '라이프'지의 평범한 직원입니다. 늘 화려한 영웅이 되는 상상만 하다가, 구조조정과 사진 원판 분실이라는 위기를 맞아 실제로 아이슬란드와 히말라야를 여행하게 됩니다. 안전한 사무실이라는 '소유의 공간'을 벗어나 '존재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설표(Snow Leopard)를 발견하고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설표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으로, '히말라야의 유령'이라 불릴 만큼 목격하기 어려운 동물입니다. 그는 카메라로 그 순간을 '소유'하기보다 오롯이 그 아름다움을 '존재'로서 감상하기를 택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자원이 부족해 일상이 멈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는 태도가 아닐까요?
제가 최근 일주일 동안 사실상 돈이 부족해서 무언가를 사거나 가지려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매일 아침 텃밭에 나가 흙 한 줌을 만지고, 물을 주며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이게 바로 프롬이 말한 존재 양식이고, 월터가 여행에서 깨달은 '삶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Life)'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원 부족 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중동 전쟁으로 폴리에틸렌 수급이 어려워지고, 택시비가 오르며, 환율 변동성(FX Volatility)에 중소기업들이 신음하는 이 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환율 변동성이란 외환 시장에서 환율이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정도를 의미하는데, 이는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듭니다(출처: 한국은행).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24년 기준 34.5%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각자 종량제 봉투를 구비하고, 각자 차를 몰고, 각자 물건을 사들이는 '소유 양식'의 삶이 확대됩니다. 하지만 이번 자원 부족 사태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소유적 삶'의 취약함을 일깨워줍니다.
미세먼지 점검원으로 활동하며 제가 마주하는 뿌연 하늘은 우리가 대지를 정복하고 소유하려 했던 오만한 태도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산업 시설, 아파트, 공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이 배출되는지 우리는 평소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 주변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살아갑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다주택자를 겨냥한 규제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십 채, 수백 채의 주택을 소유하며 부를 축적하는 반면,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진정 어떤 삶이 옳은지,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고 경제적 여유를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전쟁 중에 모든 것이 파괴된 곳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지만, 생명을 향한 우리의 경외심과 연대감은 무한합니다. 종량제 봉투 세 장을 아껴 쓰는 행위를 개인의 절약으로만 보지 말고, 고통받는 지구 공동체와의 '존재적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텃밭의 돌멩이 하나에서 지구의 역사를 읽어내고, 물 한 방울을 아끼며 그 가치를 느끼는 것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존재적 풍요'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삶 말입니다. 오늘 제가 쓰고 있는 이 노트북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봤습니다. 제가 쓴 글들이 모두 사라지는 걸까요? 글의 존재 가치도 함께 사라지는 걸까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막연하게 소유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날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진짜 존재는 소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누군가와 진심으로 관계 맺는 데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