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기쁨은 활동 능력이 커지는 상태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남긴 말입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 장날, 자살예방 캠페인 서포터즈로 나가 설문지를 들고 어르신들 앞에 앉았다가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혼자 오신 한 남자 어르신이 "수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담담하게 적어 주셨을 때였습니다. 그분의 눈에는 불꽃이 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의 눈빛이었습니다. 사랑이 끊기면 삶의 힘도 같이 가늘어진다는 것을, 그날 저는 설문지 한 장으로 배웠습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추창민 감독, 2011)를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장면들을 더듬어 보려 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께는 결말보다 감정의 결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욕쟁이 할아버지가 옷을 갈아입은 날
영화 초반, 김만석(이순재)은 새벽 우유 배달 내내 투덜댑니다. 말투는 거칠고 세상은 전부 귀찮아 보입니다. 그런데 파지를 줍는 송이뿐(윤소정)과 마주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아주 조용한 변화가 생깁니다. 어느 날 그가 허름하던 점퍼를 단정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장면에서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그 장면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누군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 아닐까요.
스피노자는 이 감정의 움직임을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코나투스란 모든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고 확장하려는 내적인 힘 또는 충동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살아가려는 힘"인데, 스피노자는 그 힘이 인간에게서는 욕망과 감정,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inoza's Ethics).
김만석이 옷을 갈아입은 것은 그냥 차림새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해 몸을 돌렸다는 뜻입니다. 꺼져가던 코나투스가 방향을 찾은 장면이라고 읽힙니다.
젊을 때의 설렘과 다르지 않습니다. 20대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머리를 다듬고, 40대에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옷을 고르는 마음. 그 마음의 뿌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곳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군봉의 하루가 사랑인 이유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장군봉(송재호)이 아내 조순이(김수미)를 씻기는 장면이었습니다. 치매가 깊어진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군봉은 화내지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돌봄인가, 사랑인가"를 구분하려 했는데, 그 구분 자체가 틀린 질문이었습니다. 돌봄과 사랑은 이분법이 아니었습니다.
아프레시아시옹(appreci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철학과 윤리학에서 쓰는 이 단어는 상대방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돌봄이 사랑이 되는 순간입니다. "저 사람이 무엇을 못 하는가"가 아니라 "저 사람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다"는 감각.
스피노자는 사랑을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으로 정의했습니다(출처: Baruch Spinoza, Ethics, Part III, Definitions of the Affects). 이것을 장군봉에게 대입하면, 조순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활동 능력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라고 읽힙니다.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그는 오늘도 아침을 챙깁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힘이 표현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돌봄이 일방적 제공이라면, 사랑은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는 관계입니다.
-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것이 돌봄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함께 묻는 것이 사랑에 가깝습니다.
- 사랑 안에 돌봄이 녹아 있을 때, 돌봄은 의무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가 됩니다.
장날 캠페인 현장에서 설문에 응하신 한 할머니가 "가끔 외롭다"고 체크하셨습니다. 고향을 찾은 자녀와 함께 오신 분이었는데도요. 함께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홀로 있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 가장 외롭습니다.

나이는 사랑의 조건이 아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노인 복지 이야기"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복지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노년을 이야기할 때 은연중에 과거형을 씁니다. "어떻게 사셨는지", "뭘 이루셨는지"를 물으면서 그분의 현재를 빠트립니다. 그런데 김만석은 지금 설레고 있고, 장군봉은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현재형이 이 영화를 살아 있게 만듭니다.
앙가주망(engagement)이라는 실존주의 개념이 있습니다. 앙가주망이란 자신의 삶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르트르가 강조한 이 개념은 나이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선택은 나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만석이 송이뿐에게 먼저 말을 걸고, 함께 걷기로 하고, 상대를 기다리는 그 행동들.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앙가주망입니다. 자신의 삶에 다시 개입하는 일입니다.
제가 캠페인에서 만난 어르신들을 돌아보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비스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 오늘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 그게 코나투스를 살아 있게 하는 조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노인의 사랑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이 약간 아쉽습니다. "사람의 사랑 이야기"라고 부르는 게 더 맞습니다. 그 사람이 70대일 뿐입니다.
그날 설문지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뭐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기 전에, 먼저 "요즘 뭐가 하고 싶으세요"를 한 번 물어보자고.
그 질문 하나가, 돌봄과 사랑의 차이를 만드는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노년을 너무 쉽게 ‘돌봄받아야 하는 시기’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건강과 생활 지원도 중요하지만, 노년에도 사랑하고 배우고 선택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돌봄과 사랑은 어떻게 다를까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나이가 들어서도 나의 삶의 힘을 키워주는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배우자, 친구, 가족, 이웃, 지역사회 등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북돋우는 관계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추창민 감독,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김만석·송이뿐과 장군봉·조순이 두 노년 커플의 사랑과 돌봄을 중심으로 한 영화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연합뉴스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 Baruch Spinoza, Ethics. 코나투스를 각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려는 고유한 힘으로, 인간에게서는 욕망과 감정 및 활동 능력과 연결되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inoza on the Emotions. 사랑, 기쁨, 슬픔을 활동 능력의 증가와 감소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스피노자의 감정론을 참고했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B7%B8%EB%8C%80%EB%A5%BC%20%EC%82%AC%EB%9E%91%ED%95%A9%EB%8B%88%EB%8B%A4(%EC%98%81%ED%99%94)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pinoza-psychological/
https://www.gutenberg.org/ebooks/3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