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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자격증보다 먼저 어른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어바웃 타임》과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법(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에픽텍토스)

cinema-1 2026. 10. 4. 05:23

자녀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자격증 한 장, 통장 잔액, 아니면 안정적인 직함? 저는 한동안 그런 것들로만 아들의 성장을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국집 저녁 한 끼를 계기로 멈칫했습니다. 그 멈칫함이 결국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어도 바꾸지 못하는 것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2013년에 내놓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팀은 스물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비밀을 듣습니다. 남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처음에 팀은 그 능력을 사랑을 얻는 데 씁니다. 어색했던 첫 만남을 되감고, 어설픈 고백을 다시 꺼냅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영화의 무게 중심은 사랑 이야기가 아닌 데 있습니다. 팀과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네는 삶의 방식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들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를 두 번 살라고. 처음에는 그냥 살고, 두 번째에는 같은 하루를 다시 살되 이번엔 제대로 바라보라고. 저는 이 장면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결국 배우는 것이 '되돌리지 않는 법'이라는 반전이 묘하게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는 결국 이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순간을 바꿀 수 있어도, 그 순간을 충분히 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그 질문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녀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는 부모는,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그 시간을 바라봐야 할까요.

성장은 이력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중국집 가서 저녁 먹을래?" 실업 상태인 제가 먼저 외식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터라, 그 전화가 조금 의외였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들이 얼마 전 회사 회식을 했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적어도 회사 생활에 조금씩 섞여들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데 식사 중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도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처음엔 그 말이 얼마나 큰 무게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흘려들을 뻔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그 한마디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떠올리게 됩니다. 에우다이모니아란 단순히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발휘해야 할 탁월성을 실제로 살아가는 활동 자체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성취 목록이 아니라 삶의 방향으로 이해했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Ethics).

그렇다면 아들의 그날이 달라 보입니다.

  • 자격증을 따지 않았습니다.
  • 학점은행제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 PC방에 가는 것을 그만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신이 알게 된 장소를 기억해두었다가 엄마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알아챘습니다. 이것들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항목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관계를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에픽테토스의 철학사상 이미지

 

부모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과 붙잡아야 하는 것

 

칸트는 인간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존재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칸트의 이 원칙, 즉 인간 존엄성의 정식이란, 어떤 사람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도 이 말은 적용됩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Kant's Moral Philosophy).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혹시 저는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보고 있지만, 그 '잘됨'의 기준을 제가 먼저 그려놓은 건 아닐까? 자격증, 직업, 연봉, 계획적인 생활.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이 내 기준의 모양을 하고 있을 때, 그건 아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이 이 지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스토아 사상의 핵심 개념인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란, 내가 실제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언제 공부를 시작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는 제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1. 오늘 아들이 전화해 왔을 때 어떤 목소리로 받을 것인지
  2. 걱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혹은 잠시 내려놓을 것인지
  3. 아들의 작은 변화를 성취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냥 바라볼 것인지
  4. 그리고 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저는 지금 일자리를 찾고 있고, 귀농귀촌을 고민하고 있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동안 제 삶까지 멈춰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이번 저녁 한 끼가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바웃 타임》에서 팀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친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완벽한 하루를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하루를 충분히 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선물이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을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 중국집 저녁 이후로 저는 아들을 볼 때 두 가지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두 번째 질문을 자꾸 잊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자격증보다 먼저, 제가 미처 보지 못한 방식으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성장을, 혹시 너무 좁은 눈으로 보고 계신 건 아닐까요?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1. 나는 자녀의 성장을 성적, 자격증, 취업, 연봉 같은 성취로만 확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2. 자녀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존중하면서도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일까?
  3.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동안 나는 지금 나 자신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참고 자료

  • Richard Curtis, About Time (2013). 영화의 부자 관계가 작품의 중요한 정서적 중심으로 평가된다는 점은 Screen Daily 등의 평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ncient Ethical Theory” —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과 인간의 탁월한 활동에 관한 설명.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espect”, “Kant’s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 — 인간을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칸트의 윤리와 자율성에 관한 설명.

참고: https://namu.wiki/w/%EC%96%B4%EB%B0%94%EC%9B%83%20%ED%83%80%EC%9E%84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istotle-ethics/
https://plato.stanford.edu/entries/kant-mor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