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인정 교육을 놓친 날, 나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하루》 × 에픽테토스
실업인정 교육을 놓친 날 오후, 저는 차 안에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고용센터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하루 전체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루를 잘못 살았다는 것이, 정말 내 삶 전체가 어긋나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홍상수의 《우리의 하루》는 바로 그 질문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영화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홍상수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찍었을까
《우리의 하루》는 2023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홍상수의 서른 번째 장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사건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극적인 사건이 없습니다.
인물들은 만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하루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 가능성 자체를 찍은 것은 아닐까 하고요.
영화에는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빛, 소품, 공간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뜻합니다. 홍상수의 미장센은 유독 일상의 디테일에 집중합니다. 컵 하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한 줄기. 그 평범한 것들이 오히려 인물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그 장면들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귀농인의 집에서 단호박을 손질하던 그 오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약을 챙기러 갔다가 고추도 정리하고, 처음으로 단호박 수프를 끓였습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이런 하루도 꽤 충실했구나, 하고요. 그러다 고용센터 전화를 받은 겁니다.
홍상수의 카메라는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오늘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당신이 오늘 실제로 산 것은 무엇입니까?
에픽테토스가 단호박 수프 앞에서 말했을 것
에픽테토스(Epictetus)는 1세기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입니다. 노예 출신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핵심 개념은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입니다. 프로하이레시스란 우리 의지 안에 있는 것, 즉 판단·선택·반응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이것만이 진정으로 우리 것이라고 했습니다(출처: 에픽테토스, 『엔케이리디온』).
그의 가르침을 따라 그날 하루를 두 가지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제가 바꿀 수 없었던 것:
- 이미 놓쳐버린 교육 시간
- 문자 안내를 잘못 이해한 과거
- 고용센터 담당자가 저를 어떻게 볼지
제가 지금 선택할 수 있었던 것:
- 다음 날 고용센터에 다시 가는 것
- 중요한 일정을 달력에 직접 적는 습관을 만드는 것
- 이 실수로 나 자신을 무능하다고 단정짓지 않는 것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 교육을 놓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제가 재취업 후에도 일을 망칠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 연결은 제가 만들어낸 판단이었습니다.
여기서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개념도 함께 생각해볼 만합니다. 아타락시아란 외부 사건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정 상태를 뜻합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이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필요한 고통을 더하지 않는 태도입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 "Stoicism").
솔직히 저는 그날 아타락시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자기 비난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감정이 저를 잠식하도록 두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인생 2막에서 시간표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하루의 구조가 바깥에서 주어졌습니다. 출근 시간이 있고, 업무 우선순위가 있고, 퇴근 시간이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적어도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고 나서는 그 구조가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오히려 더 복잡해졌습니다. 텃밭을 돌보고, 귀촌을 준비하고, 국선도를 배우고, 실업급여 절차를 밟고, 재취업도 고민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어느 것도 확실한 중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이 든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업 후 처음으로 혼자 하루를 설계해야 할 때, 취준과 알바와 인간관계와 자기계발이 동시에 밀려올 때, 그 막막함의 질감은 닮아 있습니다.
홍상수의 영화 속 인물들도 그런 하루를 삽니다. 대단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냥 그 하루 안에서 가능한 것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카메라를 오래 고정시킵니다.
저는 그 시선이 어떤 위로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내러티브 시네마(narrative cinema)는 사건의 연속으로 삶을 설명합니다. 내러티브 시네마란 원인과 결과, 갈등과 해소로 구성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홍상수의 영화는 그 구조를 일부러 지웁니다. 삶이 항상 그런 인과율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실수 하나가 내일의 실패로 직결되지 않습니다. 그 연결은 제가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는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남았습니다. 영화가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질문을 남겨두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안에 진짜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직도 그 질문에 완전히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만 단호박 수프를 처음 끓였던 그 오전만큼은, 분명히 제 것이었다는 생각은 합니다.
생각해볼 질문
- 작은 실수 하나를 내 인생 전체의 실패로 확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 직장을 떠난 뒤 나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다시 만들어가는 중은 아닐까?
- 완벽하지 않았던 오늘 하루 속에서도 내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참고: https://namu.wiki/w/%EC%9A%B0%EB%A6%AC%EC%9D%98%20%ED%95%98%EB%A3%A8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to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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