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코치 카터》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의 철학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코치 카터》는 스포츠를 통해 인격과 책임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 주는 영화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반복되는 행동과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맨십은 경기 규칙을 지키는 것을 넘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학교 스포츠의 목표는 우승뿐 아니라 건강한 시민과 공동체 구성원을 길러내는 데 있다.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 학교 응원단이 상대 학교와 지역을 비하하는 구호를 사용해 논란이 됐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단순히 "학생들이 잘못했네"로 넘길 수 없었습니다. 이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결과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주의가 만들어낸 응원 문화
솔직히 이번 사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성적 조작이나 승부 조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문제였지만, 상대방 팀을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응원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낯선 일도 아닙니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결과주의(結果主義)란 과정이나 태도보다 최종 성과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가치 체계를 말합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은 대학에 몇 명을 보냈는지, 대회에서 몇 위를 했는지가 학교의 얼굴이 됩니다. 예전처럼 플래카드를 걸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학교별 진학 순위나 대회 성적표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검색해봤는데, 실제로 학교 홍보 페이지에 수상 실적이 빽빽하게 나열된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학교 스포츠도 예외가 아닙니다. 운동부를 운영하는 목적이 학생의 성장보다 학교 명예에 기울어 있다면, 선수들이 흡수하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이겨라." 그 과정에서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후순위가 됩니다. 이번 응원 구호가 우발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이면에 오랫동안 습관화된 문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역사 인식 문제로 논란이 된 기업 사례처럼,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이 사회 곳곳에서 암암리에 용인되는 분위기가 청소년들에게도 스며든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이건 아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덕의 윤리로 본 스포츠맨십의 본질
그렇다면 스포츠는 원래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오래된 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덕의 윤리(Virtue Ethics)를 제시했습니다. 덕의 윤리란 인간이 어떤 행동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한 번의 용감한 행동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들이 쌓여 그 사람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 같으면서도, 막상 스포츠 현장에 대입해보면 전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곳들이 많으니까요.

영화 《코치 카터》는 이 철학을 정확히 실천한 사례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코치 켄 카터는 농구 기술보다 먼저 약속을 요구합니다. 수업 출석, 예의,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 선수들은 처음에 반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코트 밖에서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코치 카터가 강조한 것은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었습니다. 스포츠맨십이란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상대를 존중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건 경기 후 악수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평소 훈련 방식, 언어 습관,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쌓여야 비로소 몸에 붙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란 단순한 기쁨이나 성공이 아니라, 덕을 실천하는 삶 속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이자 번영을 의미합니다.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순간의 쾌감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선수를 타고난 재능으로만 설명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관점이 절반 정도만 맞다고 봅니다. 재능은 출발점일 뿐이고, 그 선수가 어떤 습관을 반복하느냐가 결국 그를 정의합니다.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연결 짓습니다. 내적 동기란 외부 보상(상금, 순위, 명예)이 아니라 활동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내적 동기가 강한 선수일수록 윤리적 경쟁 행동과 스포츠맨십 지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학교 스포츠가 지금 당장 바꿔야 할 것들
그렇다면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떠오릅니다. 인성교육진흥법이란 2015년 제정된 법률로, 학교 교육과정 안에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포함하도록 규정한 제도입니다. 법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씁쓸합니다. 인성을 법으로 강제해야 할 만큼 교육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게다가 일부 학교에서는 이 인성교육 항목조차 점수로 환산해 학생부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인성까지 점수화되는 지경이 된 겁니다.
학교 운동부가 진정한 교육 공간이 되려면 적어도 다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대회 성적보다 선수의 학업 참여율과 생활 태도를 운동부 평가 기준에 포함하기
- 응원 문화를 코치와 교사가 함께 설계하고 사전 점검하는 체계 마련하기
- 경기 전후 상대 팀에 대한 존중 의식을 훈련 루틴에 통합하기
- 승패 결과 중심의 학교 홍보 방식을 선수의 성장 스토리 중심으로 전환하기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학교 운동부 학생 중 정규 수업 결손 비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코치 카터가 수업 참여를 첫 번째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운동장 밖에서 먼저 사람이 되어야 코트 위에서도 제대로 경쟁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그 영화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정치권의 혼란, 선거관리 문제, 역사 인식 논쟁까지.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합니다. 응원 구호 하나가 논란이 됐지만, 그 구호를 자연스럽게 외쳤던 아이들이 문제의 시작점은 아닙니다.
스포츠에서 이기는 것이 나쁜 목표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기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는 습관이 몸에 배면, 그 습관은 경기가 끝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얼마전 재취업에 나선 남편이 수습기간동안 아들뻘 되는 직원에게 반말을 듣고 더이상 근무를 지속하지 못하고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Aristotle의 말대로, 우리는 반복하는 행동이 곧 우리 자신이 됩니다. 학교 스포츠가 더 나아가 학교교육이 무엇을 반복하게 만드느냐, 그 선택이 결국 어떤 어른을 만들지 결정합니다. 이번 논란이 응원 문화 하나를 바로잡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학교 교육과 학교 운동부 전반의 교육 철학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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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승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 있을까요?
나의 평소 말과 행동은 어떤 습관을 만들고 있으며, 그 습관은 어떤 사람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있을까요?
학교 교육에서 실력과 인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두 가지는 함께 길러져야 할까요?
참고:https://news.nate.com/view/20260702n35317?mid=n0412
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09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