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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했는데, 왜 마음 한쪽이 편해졌을까《인생은 아름다워》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cinema-1 2026. 8. 9. 05:32

수용소 안, 귀도는 아들의 눈을 피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과장된 발걸음으로 걷습니다. 마치 우스꽝스러운 병사 흉내를 내듯이. 조슈아가 그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귀도는 끝까지 웃음을 연기합니다. 그 장면 앞에서 저는 한참 멈췄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유독 그 장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미세먼지 감시원 채용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였거든요. 8개월 동안 일했던 자리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실망 아래에서 뭔가 후련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게 뭔지 몰라서 영화를 다시 켰고, 귀도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에피쿠로스(Epicurus)가 떠올랐습니다.


귀도는 왜 그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을까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2차 세계대전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합니다. 귀도는 유대인이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강제 수용됩니다. 어떤 영웅도 아닙니다. 그저 유머 감각이 남다른,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런데 귀도가 그 극한의 상황에서 아들에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건 게임이야. 1000점을 먼저 모으면 진짜 탱크를 받는 거야." 수용소 생활 전체를 게임 규칙으로 포장해버리는 겁니다. 터무니없는 설정이지만, 조슈아는 그 이야기를 믿고 버팁니다. 그리고 살아남습니다.

이 장면을 단순히 '아버지의 사랑'으로만 읽으면 놓치는 게 있습니다. 영화가 실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요. 행복은 환경이 완벽해야만 가능한 것인가? 귀도는 그 질문에 몸으로 답합니다. 현실은 지옥 같아도,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고.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그는 행복을 바깥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본 것은 아타락시아(Ataraxia)였습니다. 아타락시아란 마음이 불안과 동요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상태를 뜻합니다. 폭풍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고요함, 그것이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의 핵심이었습니다. 귀도가 총살장 앞에서 걷던 그 발걸음은, 어쩌면 아타락시아의 가장 인간적인 형태였는지도 모릅니다.


불합격이 후련했다는 감정, 이상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 후련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일하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떨어지고 나서 편하다니. 의욕이 없는 건지, 아니면 지쳐 있는 건지 스스로도 헷갈렸습니다.

그런데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1.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 —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고 싶은 것
  2. 자연스럽지만 필요하지 않은 욕망 —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것
  3.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 —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높아야 한다는 욕망

그는 인간이 불행해지는 건 세 번째 욕망을 첫 번째처럼 착각할 때라고 봤습니다.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실은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들 말입니다.

저도 오래 그랬던 것 같습니다. 퇴직 이후에도 '아직은 쉬면 안 된다', '자녀가 독립할 때까지는 계속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책임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알아챘습니다. 그게 책임감인지, 아니면 일을 안 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안인지를요. 그 둘은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속은 전혀 다릅니다.

에피쿠로스는 아포니아(Aponia)라는 개념도 말했습니다. 아포니아란 몸에 불필요한 긴장과 고통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히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없어도 되는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불합격 이후 찾아온 후련함은, 어쩌면 그 아포니아에 가까웠는지도 모릅니다. 억지로 떠안고 있던 긴장이 잠깐 내려간 것이었을 테니까요.

에피쿠로스의 욕망 분류와 아타락시아 개념에 대한 학술적 서술은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귀도가 조슈아에게 준 것, 그리고 제가 스스로에게 줘야 할 것

영화 말미에 조슈아는 살아남아 탱크를 맞이합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처럼요. 귀도는 없지만, 조슈아는 삶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조슈아의 목소리가 영화를 감쌉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선물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내게 바친 희생이었습니다."

저는 그 마지막 목소리가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귀도가 아들에게 준 건 정보도 돈도 아니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더 많이 버는 것보다, 불안을 옮기지 않는 것. 자녀가 나를 걱정하게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내 삶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게 한 걸음 물러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작품 정보와 배경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또 하나의 행복 조건은 필리아(Philia)였습니다. 필리아란 우정과 친애,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진실한 연결이 쾌락이나 부보다 행복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 퇴직 이후 공백이 생기는 건 일만이 아닙니다. 매일 얼굴 보던 사람들도 사라집니다. 그 빈자리를 다음 일자리로만 채우려 하면, 정작 필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에피쿠로스의 철학사상 이미지


그 불합격 문자를 다시 보면 이제 조금 다른 게 보입니다. 탈락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의 가치를 평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귀도도 수용소 안에서 적의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아들에게 보여준 발걸음 하나에 담겨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묻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정말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가?" 귀도는 몸으로 답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직 답을 찾는 중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질문을 좀 더 오래 안고 있어보려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이 충분하다고 느끼십니까?

 

함께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정말 일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 자녀를 돕는 삶과 나 자신을 위한 삶 사이에서 나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 더 많은 것을 얻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지금 내 삶에서 이미 충분한 것은 무엇일까?

참고: https://namu.wiki/w/%EC%9D%B8%EC%83%9D%EC%9D%80%20%EC%95%84%EB%A6%84%EB%8B%A4%EC%9B%8C
https://plato.stanford.edu/entries/epicurus/
https://www.imdb.com/title/tt0118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