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투모로우》로 읽는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
"우리가 경고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을 뿐이죠."
영화 속 잭 홀 박사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저는 스크린을 보면서 묘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움도 분노도 아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뉴스에서 본 적 있는 표정, 회의실에서 들어본 적 있는 침묵 같은 것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만든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책임의 원리와 함께 읽으면, 화면 속 폭풍보다 훨씬 무거운 무언가가 남습니다.

경고는 있었다, 듣는 귀가 없었을 뿐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해일도 빙하도 아닙니다. 잭 홀 박사가 정치인들 앞에서 기후 붕괴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만, 그 자리에서 부통령이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경제에 미칠 영향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박사는 입을 다뭅니다. 발표 자료는 접힙니다. 회의는 끝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춘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 틀린 말을 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옳은 말을 했는데 방이 그냥 조용해졌기 때문입니다. 틀린 반박조차 없었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스 요나스는 1979년 저서 『책임의 원리(Das Prinzip Verantwortung)』에서 이 상황을 이미 예견했습니다. 그는 현대 기술문명이 인간에게 전례 없는 힘을 주었지만, 그 힘에 걸맞은 윤리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달려가는데 책임은 제자리에 서 있는 상태, 그것이 요나스가 가장 우려한 지점이었습니다(출처: 한스 요나스, 『책임의 원리』, 서광사).
솔직히 처음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독일 철학 특유의 두껍고 진지한 문장들이 이어져서, 잠깐 책을 덮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투모로우》를 다시 보고 나서 다시 펼쳤을 때, 갑자기 글자들이 다르게 읽혔습니다. 영화가 이 책의 가장 좋은 해설이었던 셈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의무
요나스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미래세대 윤리(Future Generation Ethics)입니다. 미래세대 윤리란 지금 살아 있지 않은 사람들, 즉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우리의 도덕적 책임 범위 안에 포함된다는 생각입니다. 과거의 윤리는 주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었습니다. 이웃, 가족, 공동체. 하지만 요나스는 그 범위를 시간 축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논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들어낸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수십 년씩 머뭅니다. 지금 파괴되는 숲은 다음 세기까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사람들은 지금 투표소에 가지 못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잭의 아들 샘이 갇힌 뉴욕 도서관 장면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냉기가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고, 아이들은 책을 불태워 온기를 만들어냅니다. 그 화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건 미래 세대가 살기 위해 과거가 남긴 것들을 소모하는 장면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지식도, 문화도, 자원도 결국 그들의 생존을 위해 타들어 갑니다.
요나스가 말한 책임의 원리(Principle of Responsibility)는 "인간의 행동은 미래에도 인간적 삶이 가능한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제로 요약됩니다. 이 원리가 전제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빌려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ans Jonas).
시골에서도 에어컨은 돌아간다
제가 지인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맑은 공기가 좋아 도심을 떠나 시골로 내려간 분이었습니다. 마당엔 텃밭이 있었고, 마루에서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건조기와 공기청정기, 식기세척기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뭔가를 말하려다 그냥 웃었습니다.
그분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 장면이 생각나는 건, 우리가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속도가 자연이 버티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요나스는 이것을 기술문명 비판(Critique of Technological Civilization)의 맥락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기술문명 비판이란 기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가져온 힘을 인간이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를 묻는 태도입니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자연을 빠르게 바꾸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커질수록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함께 성장했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04년 이후로도 현실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조금 더 나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도심이건 시골이건, 식탁에 고기가 오르는 빈도는 줄지 않았고, 배달 포장재는 더 늘었습니다. 요나스의 경고가 영화보다 더 먼저 나왔지만, 우리 삶의 방식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책임은 영웅의 몫이 아니다
《투모로우》에서 잭 홀은 결국 아들을 구하러 얼어붙은 뉴욕을 걸어서 가로지릅니다. 그 장면은 분명 영화적 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보다 제게 더 강하게 남는 건,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이 정치인도 기관도 아니라 한 명의 아버지였다는 점입니다. 큰 구조가 실패했을 때, 결국 움직이는 건 개인의 마음이었습니다.
요나스의 철학도 결국 그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책임은 제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개인의 태도 문제입니다. 기후위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들 때, 요나스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작다는 것이 면제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요.
아래는 일상에서 책임을 실천하는 시작점들입니다.
- 불필요한 냉난방 줄이기. 한 도씨의 차이가 쌓이면 달라집니다.
- 일회용 포장재 대신 오래 쓰는 용기 선택하기.
- 고기 중심 식단을 조금씩 조정해보기. 채소가 곁들임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날을 늘려가는 것.
- 환경 관련 정책과 지역 사안에 꾸준히 관심 두기.
- 다음 세대에게 이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이 중 어느 것도 영웅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나스가 말한 책임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금 내가 내리는 평범한 선택들이 보이지 않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자각, 그 자각을 갖고 사는 것.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는 개념도 요나스와 함께 자주 언급됩니다. 예방의 원칙이란 어떤 행동의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그 결과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할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조심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영화 속 정치인들이 이 원칙 하나만 따랐더라면, 뉴욕은 얼어붙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투모로우》는 결국 두 개의 질문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하나는 자연을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자연은 이미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올여름 폭염도, 어딘가에서 타오르는 산불도, 해마다 조금씩 높아지는 해수면도 그 대답의 일부입니다. 남은 건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스무 번 넘게 다시 보면서도 아직 답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질문은 스크린 안에 있었지만, 대답은 여기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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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질문
-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이미 현재의 문제일까요?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까요?
-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무엇부터 실천할 수 있을까요?
참고: https://namu.wiki/w/%ED%88%AC%EB%AA%A8%EB%A1%9C%EC%9A%B0(%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