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는 왜 저절로 자랐을까? 《미나리》로 읽는 장자의 자연 철학
풀을 뽑으러 갔다가 철학을 만나고 왔습니다. 여름 한 철 비워둔 텃밭 앞에서, 저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공들여 심은 씨앗들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있었고, 아무도 돌보지 않은 잡초들은 제 키를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그날 문득, 《미나리》의 한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데 혼자 무성하게 자라던 그 초록빛 생명이요.

비닐 안에서 죽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한 장면을 떠올려보고 싶습니다. 영화 후반부, 순자 할머니가 물가에 심어놓은 미나리가 무럭무럭 자라는 장면입니다. 비닐도 없고, 비료도 없습니다. 그저 습기가 있는 땅에 뿌리를 내렸을 뿐인데, 이 식물은 영화 안에서 가장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저는 그해 여름 귀농인의 집 텃밭에서 정반대의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비닐을 씌우고, 모종도 심고, 꽃씨도 골라 뿌렸습니다. 그런데 장마와 폭염이 지나간 뒤 남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손 하나 대지 않은 밭 가장자리가 정글처럼 자라 있었고,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사이를 유유히 거닐고 있었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묘하게 우습기도 했습니다.

헬레니즘 철학 전통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말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스토아 철학(Stoicism)이란, 이성과 자연의 질서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덕이라고 보는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텃밭에서 동양 철학자 장자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장자는 기원전 4세기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노자의 철학을 계승해 도가(道家) 사상을 완성한 인물입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제 뜻대로 통제하려는 순간, 오히려 그 자연이 죽기 시작한다고요. 비닐 속에서 녹아내린 씨앗들이 그 말의 살아있는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위란 게으름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
장자 철학의 핵심 개념은 무위(無爲)입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지 않는 것, 즉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개입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일상어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내 방식이 아니라 그것의 방식대로 되도록 두는 것."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무위를 실천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날 텃밭에서 제가 경험한 사건이 그 증거였습니다.
풀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돌아가려던 참에, 이웃집 어르신이 제 텃밭에 제초제를 뿌리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처음엔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화도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 다음날 출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그냥 시내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생각이 많았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단기 일자리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분이 조직 안의 총책임자의 부당한 일을 내부고발했다가 총책임자가 결국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흐름을 거스르는 일들,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일들이 결국 어떻게 무너지는지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는 일 역시,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여기서 장자의 무위는 단순히 '내버려 두는 것'과 구별됩니다.
- 내버려 두는 것: 무관심, 회피, 책임을 지지 않는 것
- 무위(無爲): 흐름을 읽고, 개입해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것
-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한 것, 억지 없이 본래의 결대로 살아가는 상태
이 셋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제가 이웃 어르신 앞에서 입을 열지 못한 것은 무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장자는 《장자》 내편 「소요유」에서 "대붕이 구만 리를 날아오르는 것도 바람의 힘을 빌려서다"라고 말합니다(출처: 장자, 『장자』 내편 「소요유」). 소요유(逍遙遊)란 자유롭게 노닌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날개 짓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결을 읽고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진짜 자유라는 말입니다. 미나리가 물가를 찾아가듯이요.

억지로 키운 것은 왜 잘 자라지 않을까
《미나리》 감독 정이삭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뿌리를 내리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출처: A24, Minari Official Press Notes). 이민자 가족이 아칸소의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요.
저는 퇴직 후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합격만 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 결과에 너무 집착했던 탓인지, 공부 자체가 즐겁지 않았습니다. 비닐을 씌우고 비료를 넣었지만 싹이 나지 않던 씨앗처럼요. 자격증이 목적이 되는 순간, 배움이 사라졌습니다.
서양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불안(Anxiety)을 다루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인의 불안은 대부분 결과를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요. 불안이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리 당기는 고통입니다. 장자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합니다. 억지로 붙잡으려 할수록, 그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그날 텃밭에서 뿌리가 녹아버린 꽃씨들을 보며 저는 조용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심었던 것은 씨앗이 아니라 제 기대였는지도 모른다고. 씨앗은 제 기대를 알 리 없었고, 그저 자기의 조건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을 겁니다. 잡초가 강한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땅을 탓하지 않고, 비가 없어도, 비가 너무 많아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미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이제 귀농을 준비하면서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보다, 이 땅이 어떤 땅인지를 먼저 읽어보려 합니다. 내 계획을 심기보다, 땅이 원하는 것을 조금 더 들어보려 합니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가장 깊은 준비일 수 있다는 것을, 텃밭이 가르쳐줬습니다.
다시 그 텃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올 겁니다. 이번엔 조금 덜 야심차게, 조금 더 귀 기울이며 가볼 생각입니다. 이웃 어르신께 드리지 못한 말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정리 중입니다. 《미나리》와 장자가 제게 남긴 질문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지금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그 질문은 이십 대에게도, 오십 대에게도, 같은 무게로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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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질문
- 나는 결과를 서두르느라 자연스러운 성장의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 내 삶에서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지금 내 삶에서 '잡초처럼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참고: https://namu.wiki/w/%EB%AF%B8%EB%82%98%EB%A6%AC(%EC%98%81%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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