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로 보는 선택과 자유-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의 책임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우리는 왜 선택이 어려운가
자유와 책임의 관계
후회 없이 선택하는 방법
선택이 어려운 게 정말 내 탓일까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실지 보이차를 마실지 고민하는 저도 그렇고, 60대를 지나면서 계속 일을 할지 쉬어갈지 갈림길에 서 있는 저도 그렇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선택의 무게는 나이가 들수록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묵직해지더군요. 라라랜드가 보여주는 것도 그 무게였습니다.
선택은 얻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랑과 꿈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로맨스로만 기억하시는데, 저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선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두 주인공이 특별히 나쁜 선택을 한 게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길을 선택했을 뿐인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에 뭔가가 남습니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심리적 측면과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포기해야 했던 다른 선택지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경제학 용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저희가 살면서 느끼는 후회의 실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죠. 이러한 선택의 구조는 미스터 노바디에서도 더 극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도 젊었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더 큰 꿈을 접고 공직을 선택했습니다.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달랬는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를 접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의 본질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사르트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선택하지 않을 자유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그 말이 처음엔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공직을 선택한 것도 결국 제가 한 선택이었습니다. 형편이 그 선택을 강요한 게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 제가 결단을 내린 것이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환경 탓을 해왔는데, 결국 선택의 주체가 저 자신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포기해야 하는 것의 가치가 클수록 선택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고 '만약'이라는 형태로 남는다
- 결과가 나쁠 경우 선택 자체를 탓하는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가 발생한다
- 타인의 시선이나 비교가 개입될수록 자신의 기준이 흐려진다
여기서 귀인 오류란, 결과의 원인을 실제와 다르게 해석하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자주 일어납니다. 잘 된 일은 내 덕분이라 하고, 잘 못 된 일은 상황 탓이나 타인 탓으로 돌리는 것이죠.
자유의 무게와 책임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유를 원하면서도 선택이 두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Mauvaise foi, 마베즈 프와)이 바로 여기서 등장합니다. 자기기만이란,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태도를 뜻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어쩔 수 없었어", "상황이 그랬잖아" 같은 말들이 이 자기기만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이러한 선택과 존재의 문제는 인터스텔라에서도 다르게 드러납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후회 중 하나가, 남편과 자녀들의 선택에 제 기준을 들이댔다는 겁니다. 그들의 취미나 학업이 제 눈에 최선으로 보이지 않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때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삶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것을 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었죠.
인간의 선택 행동에 대한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선택의 자율성이 보장될수록 사람들은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후회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즉, 외부에서 강요받은 선택보다 스스로 내린 선택이 같은 결과라도 더 잘 수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나니, 자녀에게 제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선택 만족도를 낮추고 있었다는 게 뒤늦게 이해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민간점검원 계약 만료를 앞두고 또 한 번의 선택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쉴 것인지, 구직활동을 이어갈 것인지. 누군가 "이렇게 살아라" 하고 정답을 제시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정답을 외부에서 구하면 반드시 후회가 남더군요. 타인이 제시한 길에서 잘못되었을 때, 스스로 선택한 것보다 훨씬 더 공허한 감정이 생깁니다. 민간점검원 순찰중에 양쪽으로 갈라지는 등산로 표지판을 보면서 지금 내가 바로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있음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선택 이후에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진정성(Authenticity), 즉 외부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진심으로 선택하는 태도가 결국 후회를 줄이는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선택의 기준 문제는 위대한 개츠비의 인정 욕구와도 연결됩니다. 사르트르 철학 연구에서도 진정성 있는 선택이 심리적 안녕감과 깊이 연결된다는 점이 꾸준히 언급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철학회).
결국 선택이 어려운 건 우리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선택이 곧 책임이고, 책임이 곧 자유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60대를 지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하고, 그 선택 이후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게 라라랜드가 결말에서 조용히 보여준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독자 여러분도 지금 어떤 선택 앞에 서 있다면, 정답을 찾기보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인지를 먼저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선택을 미루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선택하고 있는가?
지금의 삶은 내가 만든 결과인가?
나는 내 선택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