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성적도 사나요?" 배드 지니어스와 왈처의 다원적 정의로 본 우리 시대의 '경계'
"공부는 머리 좋은 놈이 아니라 엉덩이 무거운 놈이 이기는 거야." 제가 주변의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제 자녀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입니다. 적어도 그때는 '노력'이라는 변수가 '돈'이라는 변수보다 힘이 세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입시 비리나 부모 찬스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독립적인 영역일까요?
문득 태국 영화 <배드 지니어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저 스릴 넘치는 부정행위 수법에 감탄했지만, 이번엔 주인공 '린'의 씁쓸한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가더군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그녀가 왜 위험한 범죄의 길을 선택해야 했을까. 그건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신성한 영역에 '돈'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침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처(Michael Walzer)는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는 사회의 각 영역—교육, 경제, 정치, 종교 등—은 저마다의 고유한 배분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좋은 차를 살 수 있지만, 그 돈으로 대학 합격증이나 성적까지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오늘은 왈처의 '다원적 정의'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마지막 '경계'가 어디인지 함께 고민해 보려 합니다.
왈처가 말하는 '영역의 독립'이란 무엇인가
마이클 왈처는 그의 저서 『정의와 다원적 평등』에서 사회적 가치들이 각자의 고유한 영역 안에서만 배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가치'란 돈, 권력, 교육, 명예 등을 의미합니다. 왈처는 이러한 가치들이 자신이 속한 영역의 원칙에 따라 배분될 때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봤습니다.
쉽게 말해 경제 영역에서는 자유로운 교환과 거래가 원칙이지만, 교육 영역에서는 학업 능력과 노력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적 토론과 투표가 권력을 결정해야 하고요. 왈처가 가장 경계한 건 이런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 즉 '지배(Dominance)'였습니다. 한 영역의 가치가 다른 영역을 장악하면, 예를 들어 돈이 많은 사람이 권력을 사고 학위까지 독점한다면 그건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거죠.
2010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였을 때 저도 읽었는데, 당시엔 공리주의나 롤스의 정의론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왈처의 다원적 정의론을 접하고 나서야 "아, 이게 진짜 현실적인 정의 이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롤스의 '분배의 정의'도 훌륭하지만, 왈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영역마다 정의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고 본 거니까요(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영화 속 '돈'이 교육을 침범한 순간
<배드 지니어스>에서 천재 소녀 린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부유한 친구들의 부탁을 받아 조직적인 시험 부정행위를 주도합니다. 린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경제적 가치)'를 이용해 린의 '지성(교육적 가치)'을 샀습니다. 왈처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명백한 '영역 침범'입니다.
교육 영역에서 성적이나 학위는 오직 학업 능력과 노력에 따라 배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친구들은 돈으로 타인의 노력을 구매했고, 이는 교육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시킨 겁니다. 왈처는 이런 상황을 '복합 평등(Complex Equality)'의 붕괴라고 봤을 겁니다. 복합 평등이란 한 영역에서 실패해도 다른 영역에서 성공할 기회가 있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세상은 돈이라는 단 하나의 '지배적 가치'가 교육적 성취와 미래의 기회까지 모두 결정해버리는 암울한 현실이었습니다.
저도 최근 지방 농촌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채용 과정에서 "같은 조건이면 지역 사람 우선, 나이 어린 사람 우선, 외모 좋은 사람 우선"이라는 암묵적인 기준이 작동하는 걸 봤습니다. 왈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명백히 정의롭지 못한 사례입니다. 채용이라는 영역에서는 오직 업무 능력과 적합성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관계없는 가치들이 침범한 거니까요.
"학교도 돈 받고 입학시키잖아요"라는 반박
영화 중반, 린은 학교 측에 항변합니다. "학교도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입학을 시켜주지 않느냐"고요.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기여입학제나 '부모 찬스' 논란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주요 대학 입학생의 경제적 배경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부유한 가정 출신일수록 합격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어떤 분들은 "능력 있는 사람이 돈도 잘 버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건 좀 다르다고 봅니다. 롤스나 노직이 부의 재분배 자체에 집중했다면, 왈처는 '가치의 고유성'에 집중합니다. 돈으로 좋은 차를 사는 건 정당합니다. 경제 영역 안에서의 교환이니까요. 하지만 돈으로 타인의 노력과 성적을 사는 순간, 교육이라는 인간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는 파괴됩니다.
왈처라면 린의 행동이 단순히 '나쁜 짓'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영역 간의 독립성'을 무너뜨려 결국 공동체 전체를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의롭지 않다고 말했을 겁니다. 실제로 교육부 통계를 보면 시험 부정행위로 적발되는 사례가 매년 수백 건씩 발생합니다. 뉴스에서 한 번 보도되면 잊혀질 것 같은데, 잊을 만하면 또 터집니다. 이게 바로 '돈이면 다 된다'는 착각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경계'는 어디인가
한때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하위 20% 가구 자녀보다 5배 이상 높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곧 교육적 불평등으로, 다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입니다.

왈처가 꿈꾼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가 똑같이 잘 사는 사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많은 사람은 비싼 옷을 입을 뿐, 법정이나 학교에서는 나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현실은 어떤가요? 돈이 침범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영역인 교육, 의료, 법 집행에서조차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나은 대우를 받습니다.
저는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 결국 양심을 바로 세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각자 잘하는 분야에서 보상받고 존경받는 건 당연한 정의입니다.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이 돈으로 지위를 사거나, 권력을 이용해 재물을 탐하거나, 돈으로 성적을 사고파는 건 올바른 정의가 아닙니다. 영화 마지막에 린이 막대한 돈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고발하는 장면은 단순히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 더 이상 돈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영역의 독립' 선언이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흔히 '공정'을 외치는데, 사실 그 공정의 기준은 영역마다 다릅니다. 시장에서는 돈이 기준이 되지만, 학교에서는 능력과 노력이, 법정에서는 법과 증거가, 병원에서는 환자의 필요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돈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되는 부패한 사회에 살게 됩니다. 여러분이 속한 영역의 경계는 지금 안전한가요? 한번 돌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