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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착할 곳과 아들이 선택할 길 《죽은 시인의 사회》 × 에리히 프롬

cinema-1 2026. 8. 28. 16:03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늘 워크숍에서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농촌에 정착하겠다고 준비하면서도 막상 오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앉으니 제가 얼마나 겉돌고 있는지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는 진짜 농촌에 정착할 거야?"라고 물었는데, 그 한 마디가 오히려 제 질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도, 아들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워크숍이 드러낸 것, 정착의 민낯

제가 참석한 자리는 도농순환 주민공모사업 워크숍이었습니다. 도농순환이란 도시와 농촌 사이를 오가며 자원과 사람이 상호 교류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단순히 농촌에 집을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역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발굴하고 사업을 구상하는 구조입니다. 저는 지인의 요청으로 참석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앉아보니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이미 수년 이상 그 지역에 살아온 주민들이 중심이었습니다. 서로 이름을 알고, 지역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철저히 외부인이었습니다. 귀촌이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인데, 저는 아직 그 문턱에도 서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 종합센터 자료에 따르면 귀촌 후 1년 이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비율이 적지 않으며, 정착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역사회 적응 어려움이 꼽힙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종합센터). 저는 그 통계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습니다.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그 지역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귀농보다 귀촌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었습니다. 귀농은 농업을 주된 생업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고, 귀촌은 농촌에 거주하되 다양한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형태를 뜻합니다. 저는 농사를 전업으로 삼기보다 농촌이라는 환경 안에서 새로운 일을 찾는 쪽이 저와 더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조차 아직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자율성과 통제 사이, 아들과 저의 공통점

아들이 전화로 꺼낸 말은 짧았습니다. "도저히 1년을 채우기 어려울 것 같아." 저는 처음에 반사적으로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말했습니다. 정규직이라는 고용 안정성, 근속에 따른 혜택, 주거비 지원까지 갖춰진 직장을 쉽게 포기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고 나서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 역시 농촌 정착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고 있으면서, 아들한테는 왜 버티라는 말부터 했을까. 이 지점에서 에리히 프롬의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부터의 도피란, 인간이 자유를 얻었을 때 오히려 그 무게가 두려워 스스로 권위에 복종하거나 타인의 기대에 따르려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아들에게 버티라고 했던 제 말도 결국 제가 '안전한 길'이라고 정의한 기준을 아들에게 부과한 것이었습니다.

프롬은 또한 존재방식(Being)과 소유방식(Having)을 구분했습니다. 소유방식이란 직업, 지위, 자격증처럼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말하고, 존재방식은 자신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태도입니다. 아들이 직장을 힘들어하는 이유가 단순한 회피인지, 아니면 소유방식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신호인지 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던진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도 단순히 충동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삶을 의심 없이 따라가지 말라는 촉구였습니다. 아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필요한 질문도 그것이었습니다.

아들과 저 모두가 직면한 핵심 질문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지금 내가 하려는 선택이 진짜 내 의지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가?
  • 버티는 것이 성장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인가?
  • 다음 선택지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가, 아니면 지금이 싫다는 감정만 있는가?

제 경험상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남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도 방향이 없으면 또 다른 불안이 시작되고, 계속 다니면서도 이유를 모르면 소진이 빨라집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에리히프롬의 철학사상 이미지

 

부모 역할의 전환, 설계 대신 질문으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성인 자녀와의 갈등 원인으로 부모의 과도한 진로 개입이 상위에 꼽히며, 특히 취업 이후에도 지속되는 조언이 오히려 자녀의 자기결정감을 낮춘다는 결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제가 해온 방식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자기결정감(Self-determination)이란 자신의 행동이 외부 압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심리적 감각을 말합니다. 이 감각이 낮아지면 아무리 좋은 조건의 직장도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부모가 "조금만 더 버텨"라고 반복할수록 자녀의 자기결정감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아들과 나누는 대화 방식을 바꿔보려 합니다.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기보다 아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질문을 건네는 방식으로요. "왜 아직도 거기 있어?"가 아니라 "지금 그 일에서 가장 힘든 게 뭐야?"라고 묻는 것, 작은 차이 같지만 상대에게 주어지는 공간이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변화는 아들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저 역시 귀촌이라는 선택 앞에서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제가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진짜 원하는 삶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저도 매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부모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척하기보다 "나도 아직 찾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솔직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과 저는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지만 같은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저와, 첫 번째 직업의 의미를 묻고 있는 아들. 어느 쪽도 아직 완성된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할 시간과 공간일지 모릅니다. 좋은 삶은 한 번에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면서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작은 실천

  1. 자녀에게 해결책보다 질문을 먼저 건네보기

"왜 아직도 그 직장을 다녀?" 대신

"그 일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니?"

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질문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기회를 줍니다.

  1. 조언과 결정의 경계를 구분하기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선택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인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정답이 아니라 선택할 공간입니다.

  1. 나 자신의 삶도 계속 준비하기

자녀의 삶을 걱정하는 동안 부모 자신의 삶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귀촌이라는 새로운 삶을 고민하면서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듯,

부모도 자신의 인생 2막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자녀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 자녀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기다려주고 어디에서 현실적인 경계를 세우는 것일까?
  •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나와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자녀는 서로에게 어떤 조언보다 어떤 질문을 건넬 수 있을까?

《죽은 시인의 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자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부모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A3%BD%EC%9D%80%20%EC%8B%9C%EC%9D%B8%EC%9D%98%20%EC%82%AC%ED%9A%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