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아들은 게임을 하고, 나는 캠핑을 갔습니다 《김씨 표류기》 × 장자
이번 주말, 저는 계곡 캠핑장에 있었고 아들은 PC방에 있었고 남편은 자전거 도로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한 가족이 같은 날 전혀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 상황 자체를 못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해야 가족답다는 생각,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주말이었습니다.
소요유(逍遙遊)가 말하는 것: 각자의 리듬을 인정하는 법
장자 철학에서 소요유(逍遙遊)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소요유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맞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억지로 같은 모양에 끼워 맞추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고통이 커진다는 것이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저는 꽤 오래 이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아들과 함께 남편이 있는 도시를 찾아갔습니다. 가족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도 남편은 자전거 타고 싶어 하고, 아들은 핸드폰 들여다보고, 저만 어디 가자고 조르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같이 있어도 따로 노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제가 진짜로 불편했던 것은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나와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느냐'는 기대의 충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영화 《김씨 표류기》를 생각해보면, 한강 밤섬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섬이라는 공간이 외롭고 비참한 곳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는 장소가 됩니다. 외부의 시선과 기준이 사라지자 비로소 자기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과 외로운 시간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이번 주말 제 경험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가족 관계에서 자율성(Autonom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율성이란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행동과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율성이 보장될 때 내적 동기가 높아지고 관계 만족도도 오히려 상승한다고 봅니다. 자녀 발달 연구에서도 부모의 과도한 개입이 자녀의 자기결정능력을 오히려 낮출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번 주말 아들이 PC방에 간 것도, 처음에는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복지사 공부도 있고, 컴퓨터활용능력 시험도 준비 중이고, 직장생활도 버거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이라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걱정을 말로 쏟아낼수록 아들과의 거리만 멀어지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좋은 길을 안다고 해도 그 길을 실제로 걷는 것은 결국 당사자 자신이라는 사실, 이것이 이번 주말 제가 스스로에게 한 말입니다.
가족 관계에서 각자의 리듬을 인정할 때 도움이 되는 시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족이라는 이유로 취향과 방식까지 같아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
- 함께하지 않는 시간을 관계의 소원함이 아닌, 회복의 시간으로 재해석하는 것
- 가족을 걱정하느라 자신의 삶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는 것

귀촌 준비 중인 제가 배운 것: 각자의 삶이 모여 가족이 된다
저는 지금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 귀농·귀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란, 귀농 또는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일정 기간 현장에 직접 머물면서 영농 기술과 지역 정착 방법을 배우는 교육 거주 시설을 말합니다. 퇴직 이후 새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번 계곡 캠핑은 그 교육에서 함께 과정을 밟았던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각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유도 다르고, 목표도 달랐습니다. 귀농보다 귀촌에 무게를 둔 분, 농업 창업을 목표로 준비 중인 분, 건강 때문에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분. 저 역시 귀촌에 조금 더 기울어진 상태로 방향을 잡아가는 중입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같은 관심사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가족과의 시간이 주는 안정감과는 또 다른 종류의 에너지였습니다. 이 경험 자체가 소요유를 몸으로 실천한 시간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귀촌 준비 과정에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정서적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개념입니다. 정서적 회복력이란 어려운 상황이나 변화에 직면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다시 균형을 찾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이 회복력은 혼자만의 시간, 자신의 페이스대로 움직이는 경험,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결에서 길러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제가 계곡에서 보낸 그 시간이 정확히 그런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아서 서운한 것이 아니라, 저만의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더 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바이올린이 첼로 소리를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악기도 망가지고 음악도 망가집니다. 각자의 음역대에서 자신의 소리를 낼 때 비로소 하나의 음악이 완성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이번 주말에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재취업한 자동차 검사 일을 하면서 자전거로 자신의 리듬을 찾고 있고, 아들은 직장생활의 무게를 게임으로 내려놓고 있고, 저는 귀촌이라는 새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지만, 하루가 끝나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가족입니다.
이번 주말이 제게 알려준 것은 결국 이것입니다. 가족을 하나로 묶으려는 힘을 조금 빼는 것, 그것이 역설적으로 가족 관계를 더 오래 유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가 조금 더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제가 직접 경험한 주말이었습니다.
가족 사이에서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억지로 같은 공간에 있으려 하기보다 각자가 충분히 자신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연결되는 방식을 한 번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엔 낯설어도, 그 여유가 오히려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관계가 멀어지는 것일까?
- 나는 가족에게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 각자의 취향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94%A8_%ED%91%9C%EB%A5%98%EA%B8%B0
https://www.nypi.re.kr
https://www.koreanpsycholog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