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묻지 않는다고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턴》과 《더 컴퍼니 맨》으로 바라본 중장년 재취업과 노동의 존엄
저는 채용지원서를 보낸 뒤 하루 종일 메일함을 들여다봤습니다. 담당자가 읽었다는 표시는 떴는데, 아무 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기억합니다. 혹시 나이 때문은 아닐까.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력서 맨 위에 적힌 숫자 때문에. 그 의심이 떠오른 순간, 저는 두 편의 영화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브리프케이스 하나로 출근하는 남자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The Intern, 2015)에는 제가 오래 기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70세의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가 첫 출근을 앞두고 양복을 다려 입고, 낡은 서류가방을 챙기는 장면입니다. 젊은 동료들이 후드티 차림으로 노트북을 끼고 들어오는 사무실에, 그는 마치 1970년대 맨해튼 직장인처럼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웃음을 위한 연출이 아닙니다. 벤이 그 가방을 고른 건 습관이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낡았지만 품위 있는 그 가방은 그가 살아온 시간을 요약하는 소품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어색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무게감이 조직에 조용히 스며듭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서류가방을 고르는 손짓 하나에 이런 질문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오래 살아온 사람이 새 조직에 들어갈 때, 그는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가. 경험인가, 겸손인가, 아니면 그 둘 사이 어딘가인가.
반면 존 웰스 감독의 《더 컴퍼니 맨》(The Company Men, 2010)은 반대쪽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 직장인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다시 일어서는지를 담은 영화입니다. 한 인물은 해고 통보를 받은 날 아침에도 고급 차를 몰고 골프장으로 향합니다. 그 장면이 불편하게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 공황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직업으로만 알아왔던 사람이, 직업을 잃자마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 것입니다.
인정받는다는 것이 왜 이렇게 무거운가
이 두 영화를 연결하는 철학적 실마리가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1992)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인정투쟁이란 인간이 타인과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근본적인 욕구를 뜻합니다. 단순히 칭찬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는 확인, 그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출처: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호네트는 인정을 세 층위로 나눕니다.
- 사랑과 돌봄: 가까운 관계에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경험
- 권리의 인정: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경험
- 사회적 가치의 인정: 내 능력과 기여가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다는 경험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 구직자에게 가장 아픈 층위는 세 번째입니다. 이력서를 보내고 아무 답이 없을 때, 사람은 '내가 부족해서'라는 결론으로 쉽게 미끄러집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실제로는 일정이 밀렸거나 내부 사정이 있었을 뿐이라 해도, 구직자의 마음 안에서는 이미 사회적 가치의 부정으로 해석되어버립니다.
저는 그 감정을 압니다. 새로운 자격을 취득하고, 단기 일자리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지원서를 썼습니다. 그런데도 연락이 없으면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나이였습니다. 이건 단순한 피해의식이 아닙니다. 반복된 경험이 만들어낸 학습된 불안에 가깝습니다.

공정한 채용은 절차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인턴》의 벤은 운이 좋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 안에서 충분히 빛을 발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밖 현실에서는 그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채용 공고에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해서 채용 과정에 편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테레오타이핑(Stereotyp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스테레오타이핑이란 특정 집단에 대해 미리 형성된 고정된 이미지로 개인을 판단하는 인지 경향을 뜻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 오래 연구된 개념으로, 채용 장면에서도 나이·성별·출신 등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출처: 스탠퍼드 사회심리학 연구, Stanford Social Psychological Research).
담당자가 이력서를 펼쳐 들고 나이를 확인하는 3초, 그 3초 안에 이미 많은 판단이 끝날 수 있습니다. 조직 적응력은 어떨까, 디지털 도구를 쓸 수 있을까, 젊은 팀원들과 잘 맞을까. 이 질문들이 나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실제 업무 능력을 확인하기 전에 작동한다면, 그것은 이미 공정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도 우리나라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판단까지 법으로 막기는 어렵습니다.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말만으로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낡아지지 않는다
《더 컴퍼니 맨》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인물이 처남의 목공 작업을 돕는 장면입니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한 듯 뻣뻣하게 서 있던 그가, 나무를 다루면서 조금씩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망치를 잡는 손에 힘이 생기고, 눈빛이 달라집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그 결과물이 눈앞에 남는다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감각을 돌려주는지.
실존주의(Existentialism)라는 철학 개념이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이 미리 정해진 본질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장폴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우리가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 어떤 사람이 될지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일한다는 행위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를 일을 통해 계속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퇴직 이후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단지 경제적 필요나 지나간 시절에 대한 미련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여전히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원하는 것입니다. 20대가 첫 직장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세대가 달라도 그 감정의 온도는 같습니다.
저는 귀농을 준비하던 지역에서 단기 일자리를 했고, 직업상담사로 전직하려 자격도 취득했습니다. 돌아보면 그 과정이 단순히 스펙을 쌓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계속 뭔가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지원의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이 글을 씁니다. 연락이 왔는지, 면접 기회를 얻었는지는 이 글의 결말이 아닙니다. 제가 이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더 단순합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한, 지원서를 쓰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손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닿지 않는 자리에 있다는 것. 당신은 어떤 기회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어떤 기회를 누군가에게 주고 싶으십니까.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 나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원인을 너무 쉽게 나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 채용 과정에서 나이와 경력보다 실제 업무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어떤 기준과 절차가 필요할까?
-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기회와 존중을 제공해야 할까?
참고 자료
- 영화 《인턴》(The Intern, 2015), 감독 낸시 마이어스.
- 영화 《더 컴퍼니 맨》(The Company Men, 2010), 감독 존 웰스.
-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1992).
- 국가법령정보센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참고: https://namu.wiki/w/%EB%8D%94%20%EC%BB%B4%ED%8D%BC%EB%8B%88%20%EB%A7%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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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parq.stanford.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