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사람을 타락시키는가, 아니면 본모습을 드러내는가《트레이닝 데이》 × 니체
단기 일자리의 마지막 무렵이었습니다. 그날도 사무실 분위기는 묘하게 눌려 있었고, 퇴근후에 켠 TV뉴스에선 또 경찰 비리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두 장면이 겹치는 순간, 오래전에 봤던 영화 한 편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덴절 워싱턴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2001년작 《트레이닝 데이》였습니다. 권력의지(Wille zur Macht)라는 니체의 개념이 이 영화만큼 선명하게 보이는 작품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개념은 스크린 밖, 우리 일상 어딘가에도 조용히 살아 있습니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영화 속 이야기를 짚어보려 합니다.
신참 경찰 제이크 호이트는 베테랑 형사 알론조 해리스와 단 하루를 함께 보냅니다. 촬영 내내 알론조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목소리도 크고, 거리도 꿰고 있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두려워하거나 존경합니다. 그가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엔 묘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법전만으론 이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처음엔 저도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논리가 조금씩 비틀립니다. 알론조가 말하는 정의는 시민을 위한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언어였습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사람이 법의 언어로 자신의 폭력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춘 이유는 알론조가 처음부터 악인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처음엔 누구보다 유능하고 단단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언제부터 그 경계가 무너진 걸까, 계속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니체가 말한 권력의지는 악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니체의 개념을 잠깐 짚고 가겠습니다.
니체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본질적인 에너지를 권력의지(Wille zur Macht)라고 불렀습니다. 권력의지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이 아닙니다. 자신을 성장시키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밀어붙이려는 생명 자체의 충동을 의미합니다. 니체는 이것을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힘으로 보았습니다(출처: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
문제는 이 힘이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입니다. 자기 성장으로 향하면 창조가 됩니다. 그러나 타인을 지배하고 억누르는 쪽으로 방향이 꺾이면, 그 순간부터 타락이 시작됩니다.
제가 일했던 조직의 관리자가 떠올랐습니다. 20년 넘게 그 일을 해온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고, 실제로 전문 지식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 자신감이 조직을 이끄는 힘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 힘은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고, 결국 금품 문제로 자리를 잃었습니다.
니체가 말한 권력의지의 궤적을 그대로 밟은 셈입니다. 성장의 에너지가 지배의 욕망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익숙함이 부패를 기른다
관리자가 물러난 뒤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안도했고,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걸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들은 왜 그전엔 나오지 못했을까. 한 사람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 권력에 너무 오래 익숙해진 조직 전체의 문제였을까.
영화 속 알론조도 혼자 썩어 있지 않았습니다. 주변 인물들은 모른 척했고, 어색한 질문을 피했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트레이닝 데이》는 그 침묵에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니체는 이 지점에서 도덕 비판(Moralkritik)이라는 개념을 꺼냅니다. 도덕 비판이란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와 관행 자체를 의심하고 해체하는 철학적 작업을 뜻합니다. 니체는 "지금 옳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진짜 옳은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Nietzsche).
권력은 혼자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침묵과 익숙함이 함께 자랍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직접 그 분위기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아무 말 안 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요.
자기극복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니체가 권력의지와 함께 강조한 개념이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입니다. 자기극복이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편함과 타협하려는 충동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영화 속 제이크가 인상적인 이유는 총을 잘 쏘거나 몸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수없이 주어지는 타협의 기회 앞에서, 그는 끝내 자신의 기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이 총격전 장면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자기극복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 작은 권한이 생길 때 "이게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함께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인가"를 한 번 더 묻는 것
-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조용히 넘기지 않고, 최소한 스스로 그 감각을 기억해두는 것
- 어제 후회했던 선택을 오늘 조금 다르게 해보는 것
이게 전부입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거대한 권력을 가진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작은 권한은 있습니다. 직장에서 맡은 역할, 가정 안에서의 책임, 공동체 안에서의 영향력. 문제는 그 크기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 속담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지켜본 관리자의 이야기, 영화 속 알론조의 이야기, 뉴스에서 반복되는 공권력의 이야기가 결국 모두 이 한 문장 안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력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 권력을 사용하는 자신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때 비로소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트레이닝 데이》는 액션 영화처럼 시작해서 결국 이 질문을 남깁니다. "내가 가진 작은 권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질문은 형사도, 관리자도, 저도 아닌, 오늘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향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질문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생활 속에 적용해 볼 아이디어
- 맡은 역할이 작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 보세요.
- 권한이 생길수록 "이것이 공동체를 위한 선택인가?"를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 타인을 이기기보다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작은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권력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 내가 가진 가장 작은 권한은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까?
- 오늘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입니까, 아니면 어제의 나 자신입니까?
참고: https://namu.wiki/w/%ED%8A%B8%EB%A0%88%EC%9D%B4%EB%8B%9D%20%EB%8D%B0%EC%9D%B4
https://plato.stanford.edu/entries/nietzsche/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