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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에 붙잡혀 있는가? 영화 더 레슬러로 보는 니체의 자기 재창조

cinema-1 2026. 5. 7. 05:44

솔직히 저는 퇴직 직후 꽤 오랫동안 제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귀농귀촌 교육을 받으러 지방에 내려가서 강한 햇볕에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도시에서 만난 지인이 "부장님"이라고 부르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으니까요. 영화 더 레슬러의 주인공 랜디 램과 제가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거의 직함과 현재의 일상 사이에서 정체성이 쪼개지는 그 불편한 감각, 이 글은 그 이야기입니다.

정체성 고착화가 왜 위험한가

영화 더 레슬러(The Wrestler, 2008)에서 주인공 랜디 램은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레슬링 링 위에서만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의사에게 심장 수술을 권고받고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생겨도, 그는 결국 링으로 돌아갑니다. 이 행동은 단순한 고집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정체성 고착화(Identity Fixation)라고 부릅니다. 정체성 고착화란 자아 개념이 특정 역할이나 시점에 굳어버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귀농 교육을 받겠다고 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말렸습니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관공서에서 편하게 지내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 말이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풀과의 전쟁을 치르다 벌레에 물려 정신이 몽롱해질 때면, 그 편한 선택지가 아른거렸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정체성 고착화의 유혹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익숙한 역할로 돌아가 안전하게 머물고 싶은 본능적인 충동 말입니다.

통계를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알 수 있습니다. 국내 50~60대 퇴직자의 상당수가 퇴직 후 1년 이내에 심리적 위기감을 경험하며, 이 중 다수가 직업 정체성 상실을 주된 원인으로 꼽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이 곧 자신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깊게 박혀 있다는 뜻입니다.

니체의 자기 극복과 위버멘쉬 개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나온 위버멘쉬(Übermensch) 개념과 연결됩니다. 위버멘쉬란 기존의 가치와 역할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나가는 인간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과거의 자신에게 종속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사람입니다.

니체는 또한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개념을 경고했습니다. 르상티망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것을 직접 극복하려 하지 않고 과거의 영광이나 외부의 탓으로 감정을 돌리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퇴직 후 "예전에는 이런 일을 했는데"라는 말로 현재의 초라함을 위로하려 할 때, 그것이 바로 르상티망의 작동 방식입니다.

니체의 자기 재창조로 보는 영화 더 레슬러 '인생의 링 위에서 다시 일어서다' 이미지

제가 민간점검원으로 일하면서 호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이 개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직함이 지금의 고단함을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비교 자체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꼈습니다. 도심에서 지인들을 만나 "부장님"이라 불릴 때 잠시 안정감을 찾으면서도 곧바로 자괴감이 밀려오는 것, 그것이 바로 니체가 경고한 르상티망의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재창조가 어려운 현실적 이유

자기 재창조(Self-Reinvention)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재창조란 기존의 정체성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역할과 가치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심리적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입니다.

👉 재취업과 공정한 기회의 문제는
[인타임 × 롤스 정의론 글]

👉 직업과 정체성 문제는
[업 인 더 에어 × 사르트르 글]

귀농을 결심하고 3년째를 맞이하는 지금, 저는 그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직접 알고 있습니다. 귀농 정착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명확하게 존재합니다.

  • 농업소득 안정화에는 통상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며, 그 기간 동안의 생활비가 별도로 확보되어야 합니다.
  • 농지와 주택 구입 또는 임대 비용은 생활비와는 별개의 초기 자본입니다.
  • 귀농인의 집 같은 임시 거주 지원은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어, 이후 정착 방안을 재차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현실적 장벽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창조를 포기하고 익숙한 도시 생활로 돌아갑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후 5년 내 도시 복귀율이 적지 않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주된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심리적 고립감이 꼽힙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변화에 따르는 불확실성, 실패에 대한 두려움, 기존 사회적 네트워크의 단절,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울 뿐입니다.

현재의 나를 만드는 행동 설계

니체의 철학을 삶에 적용하는 방식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핵심은 자기서사(Self-Narrative)를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서사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 즉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내면의 이야기 구조를 뜻합니다. 과거 기반의 자기서사를 현재와 미래 기반으로 전환하는 것이 자기 재창조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농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 전환을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귀농인의 집에서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은 제가 예전에 어떤 직함을 가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저는 그냥 실습생이고, 그 관계 안에서는 과거가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비교의 기준이 사라지니 지금 이 순간의 행동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재창조를 실제로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역할 해체: "나는 OO이었다"는 과거형 정체성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2. 현재 기준 재설정: 과거의 성과 기준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3. 행동으로 증명: 정체성은 생각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으로 형성됩니다. 농사 실습 하나하나가 "저는 농업인입니다"라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4. 불확실성 수용: 민간점검원 계약 만료 이후 어떤 삶이 펼쳐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을 위협이 아닌 가능성으로 읽는 훈련이 자기 재창조의 핵심입니다.

더 레슬러의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서사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은 언제나 가능했고, 끝까지 가능했습니다.

언제까지 과거의 나로 지금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귀농 3년째, 민간점검원 계약 종료를 앞둔 지금 이 시점이 제게는 그 선택의 연속입니다. 정답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직함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하는 행동으로 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3년은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은 완성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것이 전부입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과거의 나로 현재를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경험인가, 아니면 집착인가?
나는 지금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가?


참고 https://thefilm73sin.tistory.com/entry/%EC%98%81%ED%99%94-%E3%80%88%EB%8D%94-%EB%A0%88%EC%8A%AC%EB%9F%AC%E3%80%89-The-Wrestler-%EB%AA%A8%EB%93%A0-%EC%A0%84%EC%84%B1%EA%B8%B0%EB%8A%94-%EC%A7%80%EB%82%98%EA%B0%84-%EB%92%A4%EC%97%90-%EB%8D%94-%EC%84%A0%EB%AA%85%ED%95%B4%EC%A7%84%EB%8B%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