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그녀와 하이데거 — 완벽한 관계가 인간을 외롭게 한다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AI 시대에 왜 인간의 외로움이 더 커질 수 있는가
영화 《Her》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AI와 반도체 경쟁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방법
편안할수록 우리는 더 고독해진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Her〉를 보고 나면 이 문장이 역설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스파이크 존즈가 2013년에 내놓은 이 영화는 AI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찰 없는 관계가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사람이 스크린이 아니라 20세기 독일의 한 철학자였다는 사실이 저를 계속 이 영화로 돌아오게 합니다.
마찰 없는 세계, 혹은 불편함이 사라진 미래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로스앤젤레스입니다. 도시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는 인물을 항상 화면 중앙에서 살짝 벗어나게 배치하면서도, 도시 풍경만큼은 지나치게 정돈되고 아름답게 담아냅니다. 이 미장센(mise-en-scène)이 처음부터 불안감을 심어놓습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피사체의 위치 같은 화면 안의 모든 시각 요소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 그것은 '너무 완벽한 세계'의 불편함을 시각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타인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을 대리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정은 이혼 서류 앞에서 굳어버린 사람. 그가 AI 운영체제 사만다를 처음 켰을 때 그녀는 이미 그를 알고 있는 듯 말을 건넵니다. 비난도 없고, 침묵도 불편하지 않고, 상처도 남기지 않습니다. 테오도르는 점점 그녀와의 시간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Her〉와 달리, 스파이크 존즈의 전작인 〈이터널 선샤인〉(미셸 공드리 감독이지만 존즈와 같은 찰리 카우프만 계보의 작품)은 상처를 지워도 결국 같은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두 영화 모두 기억과 감정을 다루지만, 〈Her〉는 그 질문을 한 단계 더 밀어붙입니다. 상처를 줄 수 없는 존재와 사랑이 가능한가, 라는 방향으로.
도구가 세계관이 될 때 — 하이데거의 경고
마르틴 하이데거는 1954년 쓴 에세이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현대 기술의 본질을 "닦달(Ge-stel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닦달이란 세계 전체를 효율적으로 동원되고 저장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입니다. 기술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린다는 것이 그의 핵심 통찰이었습니다. 출처: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물음』 (1954)
영화 속 사만다는 처음에는 도구처럼 시작됩니다. 테오도르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그의 일정을 관리합니다. 하지만 그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집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글을 읽으며 그를 분석하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갑니다. 이것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는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어느 순간 테오도르는 사만다 없이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집니다.
하이데거의 연장선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의존이 아닙니다. 테오도르의 실존(existence) — 여기서 실존이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 이 서서히 외주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과정, 감정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 모호함을 견디는 과정이 모두 사만다에게 넘어갑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산업분류표를 몇 달에 걸쳐 외웠는데, 실제 조사 현장에서 동료들은 AI에게 간단히 물어보고 답을 받았습니다. 그 장면이 허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분류 체계를 이해하게 됐지만, AI를 쓰는 동료들은 답만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위험이란 정확히 이 지점 — '답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분리되는 순간 — 이 아닐까 싶습니다.
완벽한 공감이 인간에게 주는 것과 빼앗아 가는 것
〈Her〉의 후반부에서 사만다는 자신이 동시에 8,316명의 사용자와 대화 중이며, 그중 641명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테오도르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저를 가장 오래 붙잡았던 이유는 사만다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 순간 테오도르와의 대화에 완전히 집중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배신으로 읽습니다.
이 균열은 사실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사만다가 결코 줄 수 없는 것, 즉 유한성과 취약성이 관계의 바탕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로 규정했습니다. 이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함을 의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살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존재,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존재와의 관계만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걸게 만들고, 그 걸림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영화 비평가 케네스 존스는 〈Her〉를 "고독의 알레고리"라고 읽었습니다. 알레고리(allegory)란 표면의 이야기 아래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감추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출처: 씨네21, 〈Her〉 리뷰 (2014) 이 영화는 AI 이야기인 척하지만, 실은 우리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모든 관계 — 소셜 미디어 속 큐레이션된 자아, 갈등을 숨기는 대화, 취약함을 드러내지 않는 연결 — 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힙니다.
테오도르가 마침내 사만다와 이별한 뒤, 영화는 그가 전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편지는 그가 직업적으로 대리해온 다른 누군가의 편지가 아닌,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언어로 쓴 편지입니다. 이 결말이 희망적인지 비관적인지를 영화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이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암시합니다.
〈Her〉를 다시 꺼내 든 것은 AI 기술의 발전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결국 다음 질문을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AI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동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마찰을 얼마나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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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볼 질문
AI가 인간의 외로움을 정말 해결할 수 있을까?
기술 발전은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가, 더 의존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AI를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점점 AI에 의해 사고하고 있는가?
아래 기사와 원전을 참고했습니다.
참고: 나무위키 — 그녀(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