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와 토마스 홉스— 질서가 사라질 때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영화 《28년 후》가 던지는 인간 본성의 질문
토머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무엇인가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는 왜 쉽게 무너지는가
국가와 법은 왜 필요한가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문명이 통째로 증발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더 인간다워질까, 아니면 덜 인간다워질까. 〈28년 후〉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지 한 세대가 지난 세상을 배경으로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든다. 영화가 진짜 무서운 건 감염자가 아니라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살고 싶으면 움직여."
짧은 대사다. 하지만 이 한 마디 안에 영화 전체가 압축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도우려는 말이 아닙니다. 살고 싶으면, 이라는 조건절이 붙는 순간 이 말은 위협에 가까워집니다. 협력의 언어가 아니라 거래의 언어입니다.
〈28년 후〉의 세계에서 인간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따뜻하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은 어떤 중간 지대, 그 애매한 온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재고 또 잽니다. 친구인지 적인지, 이용 가능한지 위험한지.
저는 이 장면을 보며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퇴직 후 뒤늦게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방 공업사에 수습으로 들어간 남편이 겪은 일입니다.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아들뻘 되는 직원에게 반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법도 바이러스도 없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힘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질서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질서가 있는데도 그랬습니다.
영화는 그 일상적인 폭력성을 종말 이후 세계로 옮겨 놓음으로써, 우리가 평소에 보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를 정면으로 보게 만듭니다.
홉스가 말한 것,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
토머스 홉스는 1651년 〈리바이어던〉을 쓰면서 인간의 자연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짧다(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법과 국가가 없다면 인간의 삶이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모두가 모두의 적이 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홉스 항목
흥미로운 건 홉스가 인간을 악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인간이 두렵기 때문에 싸운다고 봤습니다. 악의가 아니라 불안이 폭력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28년 후〉 속 인물들이 서로를 밀치고 배신하는 장면들을 보면, 이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집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무서운 겁니다.
그런데 홉스가 말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의 사유 안에서 인간은 위협을 피하기 위해 국가에 자유를 넘기는 계약을 맺습니다. 이른바 사회계약론입니다. 하지만 그 계약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계약 없이 서로를 돕습니다. 이익이 없어도, 아무도 보지 않아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28년 후〉가 단순히 홉스의 교과서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영화는 그 계약 없는 친절을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대니 보일이 이 세계를 찍는 방식에 대해
감독 대니 보일은 원래 이 시리즈를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2002년 〈28일 후〉를 만든 사람은 맞지만, 그 이후의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결정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촬영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 그 이후에 인간은 무엇을 배웠는가, 라는 질문이요.
영화의 미장센은 그 질문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폐허가 된 도시를 카메라가 천천히 훑을 때, 그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문명이 남긴 잔해들, 녹슨 자동차, 무너진 건물, 잡초에 뒤덮인 도로. 이것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목록입니다.
보일의 연출에서 제가 주목한 건 공동체 장면을 찍는 방식이었습니다.
- 카메라가 가장 느려지는 순간은 사람들이 싸울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입니다.
- 빛이 가장 따뜻하게 들어오는 장면은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입니다.
- 가장 넓은 앵글은 공동체 전체가 한 화면에 담길 때 사용됩니다.
출처: 씨네21, 〈28년 후〉 프리뷰 및 감독 인터뷰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보일은 연출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보이는 순간이 어디인지. 그 순간들에 렌즈를 오래 머물게 함으로써, 영화는 홉스의 비관을 완전히 받아들이길 거부합니다.
이 영화가 남긴 자리
결국 〈28년 후〉는 이런 질문을 남깁니다. 법과 국가가 사라졌을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홉스의 답은 공포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답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공포도 남고, 친절도 남습니다. 탐욕도 남고, 희생도 남습니다.
어쩌면 그 모호함이 가장 정직한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본래 선하냐 악하냐는 질문보다,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 인간이 더 선하게 행동하는가를 묻는 편이 훨씬 유용한 것처럼. 남편이 겪은 공업사에서의 일도, 그 젊은 직원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구조 안에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놓였던 것이기도 할 테니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질서가 사라졌을 때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라는 질문 말고. 지금 이 질서 안에서, 나는 이미 어떤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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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볼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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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선한 존재일까?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