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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으로 보는 스토아 철학 (통제론, 감정관리, 실천)

cinema-1 2026. 2. 27. 18:17

화성에 홀로 남겨진 한 우주비행사가 감자를 재배하며 생존 확률을 높여가는 이야기. 영화 《The Martian》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한 SF 생존기가 아니라 고대 스토아 철학의 현대적 구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보여준 태도는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강조한 핵심 원리를 정확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분

스토아 철학의 핵심 명제는 명확합니다. "우리에게 달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에서 이를 스토아 사상의 출발점으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통제 가능한 것(ta eph'hemin)'이란 자신의 판단, 선택, 행동을 의미하며, 통제 불가능한 것은 외부 사건, 타인의 반응, 결과를 뜻합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화성에 고립된 와트니는 구조 가능성이나 지구의 결정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식량을 늘릴 방법, 물을 만드는 화학 공식, 오늘 생존 확률을 1%라도 높일 수 있는 행동에만 집중합니다. 저 역시 최근 전기차 시동이 갑자기 걸리지 않았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황해서 여기저기 누르다 오히려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마음을 비우고 차분히 다시 시도하니 작동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에 억지로 뭔가를 하려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이 원리를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타인의 평가 → 통제 불가능
  • 경제 상황이나 날씨 → 통제 불가능
  • 오늘의 선택과 태도 → 통제 가능

불안은 줄어들지 않아도 행동은 선명해집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인의 스트레스 주요 원인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42.3%로 가장 높았습니다(출처: 통계청). 이는 우리가 얼마나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보여줍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

스토아 철학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이를 '무감정'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아파테이아(apatheia)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판단(hypolepsis)'이란 외부 자극에 대해 우리가 내리는 해석과 평가를 뜻합니다.

와트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유지합니다. 이는 도피가 아니라 심리적 통제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판단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수능 시험 당일 교통사고가 났던 지인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차분히 준비했습니다.

불안할 때 다음과 같이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이 정말 위험한가, 아니면 내가 과장하고 있는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기법은 불안 수준을 평균 37%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흔들리지 않는 삶의 실천적 정의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문제가 생겨도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입니다. 영화에서 작물이 죽고 장비가 폭발해도 와트니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그럼 다음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합니다. 이 사고방식은 기대가 아니라 현실 인식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단단합니다.

 

스토아철학과 영화 마션

 

스토아 철학에서 이를 '로고스(logos)에 따라 사는 삶'이라 표현합니다. 로고스란 우주의 이성적 질서, 자연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봄이 오듯,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납니다. 저는 한때 교회를 다니며 유일신 사상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는 종교와 무관하게 이 우주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다 낭패를 당하지 말고,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시험 실패, 실연, 사업 실패 등으로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 과잉, 비교 문화, 예측 불가능성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긍정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 그리고 오늘 해야 할 것. 이 세 가지가 정리되면 삶은 정돈됩니다.

《The Martian》은 희망 영화가 아니라 이성의 영화입니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핵심은 명확합니다. 상황은 외부에 있지만, 태도는 내부에 있습니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판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정이 판단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https://yoonistory.com/entry/%EC%98%81%ED%99%94-%EB%A7%88%EC%85%98-%EB%B6%84%EC%84%9D-%ED%99%94%EC%84%B1-%EC%83%9D%EC%A1%B4%EA%B8%B0-%EA%B3%BC%ED%95%99%EC%A0%81-%EB%AC%B8%EC%A0%9C-%ED%95%B4%EA%B2%B0-%EA%B8%8D%EC%A0%95%EC%A0%81-%EC%97%90%EB%84%88%EC%A7%80